우리나라에는 아직 전문캐디가 없다.

전문 캐디가 자리잡을 정도로 프로골프계가 풍족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프로들이 아직 그 필요성을 간과하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전문 캐디는 프로골프에 있어 절대적 존재이다.

우리나라 프로골프수준이 미국이나 일본등에 비해 떨어 진다면 그 주된
요인중 하나가 전문캐디의 부재라 생각된다.

다음이 "전문 캐디의 세계"이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미 PGA투어의 경우 톱클래스 캐디들은 주당 400달러정도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급"일뿐 상금을 타면 일정 비율을 배당 받는다.

보통은 상금의 6% 정도를 받고 우승이라도 하면 "기분 좋게" 10%를
받는 게 관행이다.

물론 캐디에 따라서는 우승 12%,톱5 10%등 성적순 계약도 있다.

분명한건 자신의 프로가 커트오프에서 떨어지면 캐디역시 무일푼이라는
점이다.

캐디의 주된 역할은 "거리 측정"과 "조언".

거리측정은 물론 단단위까지 이뤄진다.

"147야드"식이고 골퍼에 따라서는 "147.5야드"식으로 소숫점까지
요구하는 프로도 있다.

프로는 캐디가 측정한 거리를 100% 믿고 클럽을 선택한다.

거리측정이 부정확한 캐디를 채용할리도 없지만 프로들은 쳐 보면
대번에 거리를 알기 때문에 캐디의 능력여부는 금방 드러난다.

"임팩트가 부실할수도 있고 바람의 영향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문은
아마추어세계의 논리이다.

프로들은 "이 클럽은 0.5야드가 더 나간다"는 식으로 거리에 관한한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다.

만약 어쩌다 한번이라도 거리측정이 틀리면 해고 당하게 마련이다.

현재 톰 레이먼의 캐디인 앤디 마르티네즈는 87년 매스터즈때 할
서튼에게 한 클럽 큰 클럽을 권한 바 있다.

그린 경사를 감안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서튼의 볼은 그린을 오버
더블보기를 했고 그 다음주에 마르티네즈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사실 캐디목숨은 파리목숨이다.

"이제 그만 헤어지지"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유명 캐디중 한명인 피트 벤더는 87년 그레그 노먼으로 부터 카폰을
받았다.

노먼은 단 한마디했다.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 열 받은 벤더가 이유를 따지자 "글쎄 그러고
보니 이유가 없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언은 가장 미묘한 부분이다.

어떤 프로는 조언을 원하고 어떤 프로는 침묵을 원한다.

캐디들은 한마디에 수만달러의 상금이 좌우될수 있으니 무척이나 조심
스럽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 결정적 조언을 하면 그는 유명해 진다.

86년 영국오픈 최종라운드에서 피트 벤더는 그레그 노먼이 무척 긴장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노먼은 당시 3타차 선두였는데 6번홀 부턴가 긴장으로 인해 손목이 빨리
돌며 샷이 왼쪽으로 감겼다.

벤더는 그때를 "한마디 해야될 싯점"으로 판단했다.

그는 페어웨이 한복판에서 급히 걸어가는 노먼의 셔츠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봐 그레그. 당신은 너무 빨라. 말도 빠르고 생각도 빠르고 걸음도
너무 빨라. 당신은 여기서 최고이고 모든 걸 천천히 하기만 하면 우승이야.
편히 승부를 즐기는게 어떨까"

그런 조언 덕인지는 몰라도 노먼은 5타차로 첫 메이저 우승을 안았다.

닉 프라이스의 캐디로 현재 암투병중인 제프 매들런은 "유능한 캐디는
프로들의 스코어를 한 라운드에 1-2타 줄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가 드라이버를 친 것도 아니고 1m퍼팅을 놓친 것도 아니지만
프로들의 한타 한타에 울고 웃어야 한는 직업.

전문캐디는 이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직업중 하나지만 그래도 그들은
한사람의 우승과 "스포츠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가장 멋진 직업 아닌가.

< 김흥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