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국회재정경제위에서는 다소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지난 15일 세법심사소위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채 전체회의로 넘긴 신용
보증기금법과 신기술사업금융지원에 관한 법개정안이 18일 전체회의에서
일부 야당의원들의 이의제기로 보류된 것이다.

개정안은 신보와 기술신보의 정부예산요구권만을 중기청에 이관하되
업무감독권이나 인사.예산권은 재경원이 계속 갖도록 하는 내용이다.

당초 법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새로 설림된 중기청이 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날 국민회의 김원길 이상수의원은 개정안의 두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중기청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려면 인사.예산권을 가져야하지만 정부
조직법상 문제가 있다면 최소한 업무협의권이라도 가져야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이들 기금들이 재경원과 중기청으로부터 이중 간섭을 받게될
경우 두기관간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질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날 이들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의원은 없었다.

문제는 여야의원들이 개정안에 문제점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소위에서는 어떻게 "만장일치"로 처리됐는지에 있다.

차수명 소위위원장은 "심사과정에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정부측이
국무총리행조실장까지 참석한 관련부처협의에서 개정안대로 합의했다고 해
원안대로 처리해 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해프닝은 재경원 고위관계자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서 그
근원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중기청이 생겼는데 모양새는 갖춰줘야지요"

재경원은 올들어 과연 필요한지에 의문이 가는 예금보험공사의 설립에는
적극적이었으나 중기청 관할에 속할 어음보험기금의 경우 정치권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내년예산에서 정부출연금을 한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국민경제는 아랑곳하지 않는듯한 부처이기주의를 다시 한번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박정호 < 정치부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