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영화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최신작이 개봉되면 일찌감치 극장으로 출근을 한다.

관람후 회사에 청구서를 제출하면 즉각 티켓값이 지불된다.

뿐만 아니다.

회사내엔 이들이 편히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아예 일급수준의 극장이
마련돼 있다.

케이블TV의 24시간 영화채널 DCN의 프로그램 구매팀.

이들의 업무는 국내외 시장을 샅샅이 뒤져 "괜찮은 영화"를 찾아내는
일이다.

지난94년4월에 결성된 이 구매팀은 모두 4명.

우형동과장(36) 박선진(28) 이진일(29) 엄홍식(30)씨 모두 영화와 무관한
학문을 전공했으면서도 "영화광"이란 공통점을 지녔다.

특히 해박한 영화지식을 자랑하는 박선진씨는 어릴적부터 동네 비디오가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광중의 광.

""선견지명"에 근거한 미래에의 투자였다"란 농담이 사뭇 그럴듯하다.

우과장을 제외한 전팀원이 신세대인 것은 우연이라는 설명이다.

그저 영화에 관심이 많고 열정있는 사람들을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젊은이들로 추려졌다는 것.

이중 유일한 올드세대 우형동과장은 아일랜드에서 다년간 근무했던 국제
비즈니스맨.

외국 영화사들과 밀고 당기는 협상에서 뛰어난 판단력으로 진가를
발휘한다.

물론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도 후배들 못지않다.

구매팀의 첫째조건은 "좋은 영화"를 골라내는 탁월한 안목이다.

하루에도 몇백편씩 쏟아져 들어오는 구매의뢰중 옥석을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연 5회 라스베이거스 칸등지에서 열리는 정기 국제시장에서 "물건"을
보다 싼값에 건지려면 유연한 협상력이 필수다.

94년이후 구매팀이 구입한 영화만도 1,200편이 넘는다.

DCN의 모든것이 자신들의 손에서 시작되니 이에 따른 책임감이 크다.

물론 아쉬움도 많다.

아무래도 시청률을 의식해 재미위주의 영화로 우선 손이 간다.

작품성이 뛰어난데도 인기가 없을 것이란 이유로 헐값에 구매해오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또 맘먹고 구해온 "명작"이 비황금시간에 방영되는 것도 섭섭하다.

그렇지만 "DCN이 재밌다"는 평을 듣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보람.

또 "무삭제 완역판"을 원없이 볼 수 있다는 특권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중의 하나다.

이들이 구매팀에 들어온후 공통적으로 잃어버린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과거에 커다란 즐거움이었던 "비디오 보기"라는 취미.

하지만 상관없다.

일이 곧 취미고 취미가 일이니.

DCN구매팀의 출근길이 늘 즐거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김혜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