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웅 < 산업1부장 >

며칠전 일이다.

KDI부설 국민경제교육연구소가 여론조사를 통해 청소년들의 의식을 분석한
결과가 보도됐다.

눈길을 끈 것은 우리 청소년들이 기업가를 부정적으로 보며 그 이유로
옳지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거나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한다는 점 등을
열거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아침,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한 기업인이 전화를 했다.

힘들고 챙피해서 더이상 사업할 정이 안난다고 그는 푸념했다.

그렇지않아도 불황에 힘들어 죽겠는데 자식같은 아이들에게까지 존경은
커녕 악인시 취급당하니 분통이 터진다는 것이었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이른바 불황 국면이다.

불황의 잔해는 이미 우리 주변 곳곳에 널려져 있다.

명예퇴직을 당한 40대 가장의 고뇌나 좁아진 취업문에 조바심하는 대학
졸업반 애들이 그렇다.

임대료 건지기도 힘들다는 상인들의 탄식, 월급 줄 돈이 없어 목을 메는
중소기업인의 안타까운 사연도 모두 불황의 잔해요 그림자다.

단순논리로 생각하면 불황의 원인은 다름아니다.

기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이 돈을 제대로 못벌고 경영이 악화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업이 어려우면 경제가 어렵고 경제가 어려우면 국가경영도 힘들다.

나아가 우리모두의 삶도 어렵고 고달파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참으로 기업에 대해 이율배반적 사고를 갖고 있다.

기업이 잘되야 우리도 좋아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정작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그러진 형태로 투영될 때가
많다.

솔직히 청소년들의 기업인에 대한 평가는 극히 단편적 예일 뿐이다.

어른들은 더욱 그렇다.

그것도 사회지도층이라는 인사들일수록 기업의 부정적 측면을 들추고
부풀리는데 더 열심이다.

다분히 병리적인 것 같기도한 이런 현상은 기업인의 의욕을 꺾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땅에선 더이상 제조업 하지않겠다고 외국으로 보따리를
싸는 기업인이 어디 하나둘인가.

근로자들은 물론 아이들에게조차 존경받지 못하는 <기업가>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낀다고 그날 아침 전화해준 기업인은 흥분하기도 했다.

따지고보면 우리나라처럼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대접이 소흘한데도 없다.

적어도 자본주의 체제를 국가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럴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데는 기업과 기업인의 책임도 적지않다.

일부 비도덕적 기업인의 행태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업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편으론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너무 강조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프리드만교수는 <기업인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한다면 그것은 자유
기업제도의 기저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했다.

기업의 존재가치는 무엇보다 경영을 통해 이익을 내고 이를 확장하는데
있으며 이것이 바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뜻일게다.

이처럼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우리사회 전반에
형성토록한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정치와 언론의 책임이 무시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치인들은 속성적으로 기업이란 집단을 형이하학적으로 보는 것 같다.

자기네가 고등동물이라면 기업인은 하등동물 쯤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국회가 열리면 여야없이 기업비판(주로 대기업이지만)에 목청을 돋운다.

듣는 사람은 그 저의를 의심하고 있는 지도 모르고.

따지고보면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들에게 <부와 명예를 함께 가질 생각을 말라>는 지시속에는 부는
결코 명예가 될 수 없다는 등식이 내포되어 있다.

노력해서 기업을 일으킨 경제인들에게는 섭섭한 말이다.

금방 취소가 되기는 했지만 <가진자에게 고통을 주겠다>는 발상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언론의 책임도 만만치않다.

물론 언론은 기업의 잘못을 당당히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덩치 큰 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이 곧 사회정의는 아니다.

늘 삐뚤어진 시각으로 무절제한 비판을 일삼는 일부 학자들과 정치인들의
책임없는 발언도 따지고 보면 언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전달된다.

보도뿐만 아니다.

TV드라마의 경우도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키는데
상당한 몫을 했다.

드라마 화면에 비치는 기업인은 대부분 도도하고 화려하며 음모속의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요즘 정말 어렵다고 한다.

어느 대기업의 경우 30년이상 계속되온 흑자가 올해 처음으로 적자로
바뀌었다는 소식이다.

이업종 저업종 할 것 없이 그만큼 경영환경이 나빠졌다는 이야기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기업이 어려워지니 우리 모두가 어려워졌다.

심지어 광고물량이 줄어 언론경영환경도 예전같지 않다는 소식이다.

우리가 기업과 기업인에 애정을 보내고 사랑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