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인터내셔날의 윤석민 사장(29).

그는 국내 인터넷 업계에서 무서운 아이로 통한다.

그가 지난 94년 과학기술원 후배 4명과 신용카드 2장을 자본금으로
설립한 웹인터내셔날은 창업 2년만에 매출 12억원, 순이익 3억원의
실적을 올려 업계의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이 회사는 올해 30억원의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인생을 도박으로 비유했을 때 사실 윤사장은 가능성이 낮은 베팅만을
해왔다.

그의 첫번째 인생 도박은 고등학교 중퇴였다.

당시 컴퓨터에 빠져있던 그에게 틀에 박힌 학교수업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반에서 1,2등을 고수하던 그가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을때
집안과 학교에서는 눈물반 협박반으로 그를 말렸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가 되기위해 나의 길을 가겠다는 당찬
아이의 고집에 학교와 부모는 결국 손을 들었고 그는 미련없이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1년동안은 컴퓨터에 미쳐버린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의 재능은 곧 빛을 발해 중졸 학력으로 출품한 프로그램들이 각종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중 일부는 상품으로 만들어져 성공을
거뒀다.

그의 두번째 도박은 뒤늦은 대학진학이었다.

자기만이 알고 있다고 믿던 프로그래밍 개념이 이미 대학에서 강의되는
일반화된 내용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체계적인 대학공부의 절실함을
느꼈다.

우물안 개구리의 대오각성이었다.

1년간의 학원생활끝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연세대 전산학과에 입학했다.

이어 4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90년 과학기술원에 진학했다.

그는 과기원 진학이 쾌적한 환경에서 연구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는
대의적 명분이 있었지만 사실은 병역특례를 받을수 있다는 실리를 추구한
비겁한(?) 선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과기원 박사과정에 들어가 인공지능을 연구하며 학자의 길을 걷던 그가
세번째 도박을 시작했다.

실용주의자인 그에게 연구용은 맞지 않다는 사실을 느낀 것.

결국 박사 2년차를 마치고 자퇴라는 용기를 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사업으로 실현하고자 94년 뜻을 같이하는 후배 4명과
신촌의 어느 빌딩 지하실에서 "S&T온라인"이라는 회사를 창업, 생애 최대의
도박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컴퓨터통신에 각종 온라인 게임을 서비스했고 때마침 불어닥친
국내 PC통신 바람을 타고 순항을 거듭했다.

이어 95년 10월 "웹인터내셔날"이라는 별도의 회사를 설립하고 인터넷을
기업내 전산망으로 활용하는 인트라넷 사업에 나섰다.

이 회사는 국내 처음으로 인트라넷 통합 소프트웨어 제품군인 "인트라
오피스"를 개발, 국내 인터넷 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윤사장은 꿈을 이루려는 남다른 열정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강한
승부사적 기질로 젊은 나이에 성공적인 인생 성적표를 일궈 냈다.

"어렸을 때는 컴퓨터가 내 꿈을 실현하는 도구였고 지금은 회사가
우리의 꿈을 현실화하는 수단입니다"

국내 처음으로 경력사원 공채에 스톡옵션 제도를 적용, 사원들에게 회사
실적에 따라서 억대 샐러리맨이 될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도 동료들의
"꿈의 실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국내 인터넷 소프트웨어의 1인자와 국내 인트라넷 시장 제패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하루 12시간 이상을 "혼을 담은 R&D"에 쏟으며
새로운 인생 도박을 준비하고 있다.

<유병연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