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뻥 뚫렸다던가.

융프라우 정상 9월의 쾌청한 알프스의 초가을 시야는 온통 신비로움이
가득한데 마음 한가운데 가을 하늘처럼 뻥뚫린 허전함.

여행용 가방속에 함께 하는 이 한장의 사진 때문인가.

출장을 앞두고 장도를 기원하며 가졌던 우리 빅패밀리 (BIG FAMILY)
회원들이 뇌리를 스칠때마다 함께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을 더하고
한사람씩 뇌리를 스친다.

우리 모임의 수장격인 문성호 삼아직물 사장.

항상 화제가 풍부한 그의 내조자 박복순 여사.

그옆의 항상 젊은 멋장이 정수호 안동약재사장.

언제나 명랑하고 쾌활한, 그러나 가끔 장거리 여행시 촌스런 차멀미로
일행을 당황하게 만드는 송수자 여사.

늦동이 딸의 재롱에 새로운 젊음을 만끽하는 듯한 김효원 왕거북
아동복사장.

필자보다는 어리지만 항상 누님같이 포근한 그의 내조자 임윤옥 여사.

필자와는 죽마고우인 노재윤 제코시계 사장과 그의 마누라 민순례 여사
및 필자의 행동반경에 항상 안테나를 길게 드리우고 있는 이영옥 여사.

우리 다섯 부부는 5년전부터 같이 살던 동네에 이런 저런 인연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도시 생활에서 부족하기 쉬운 이웃사랑의 즐거움을 보충하며 사는
중년 가정들의 만남은 찌든 도시 생활에 커다란 활력소가 된다.

매월 회비를 모아서 해외 여행도 하자고 다짐을 하지만 너무나도
알뜰한 내조자들 때문에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하고 또다시 내년 1월로
연기 되었다던가?

어떤 종류의 모임도 여자들의 협조없이는 원만히 이루어 지지 못함을
수없이 보아온 것을 생각하면 회원 모두의 마나님들께 감사할 뿐이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 빅 페밀리는 어떤 종류의 부부싸움도 3일을 넘기지
못한다.

어떤 회원도 눈치만 채면 쳐들어가서 해결 하고야 마는 기동성 때문이다.

나도 이의 수혜자 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행복한 불만도 있다.

부부싸움도 경에 따라서는 막걸리 익듯 시간을 두고서 삭혀야 제맛이
나는 법인데 행복한 불만인가.

그래서 일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알프스의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담은 풍경보다
가방속에 고이 간직한 설악산 울산 바위를 배경으로 한 이 한장의 사진을
자랑하고 싶다.

우리 빅 페밀리는 정말 자랑스럽고 귀한 존재 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