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신부를 침상에 앉히고 나서 대부인이 신신당부한 대로 방안의
등불들을 끄고 침상 옆에 놓은 등불 하나만 남겨놓았다.

그 등불빛을 따라 다시 침상으로 다가와서 이 등불마저 꺼야할 것인가
망설였다.

신부의 너울을 벗겨 슬쩍 그 얼굴을 본 후에 악귀가 들어오기 전에
얼른 등불을 끄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였으나, 악귀가 이미 들어와
있다면 그랬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었다.

결국 그 등불마저 끄기로 하고 우선 휘장부터 쳤다.

그렇게 보옥이 왔다갔다 하는 동안에도 신부는 아무 말 없이 너울을
두른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대옥 누이, 정말 얼굴 한번 보고 싶다. 설안이가 어찌나 칭찬을
하는지. 얼마나 아름다우면 몰라볼 정도라고까지 했을까. 하지만
첫날밤에 악귀에게 신부 얼굴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하니 등불을
끌수밖에"

보옥이 등불을 불덮개로 끄고 어둠 속에서 신부의 너울을 벗기고는
두 손으로 신부의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턱을 두 으로 싸서 받치듯이 하며 어루만졌다.

"대옥 누이, 얼굴에 살이 오른 것 같애. 몸이 많이 나아졌나봐"

보옥이 신부의 도톰한 볼을 만지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신부는 부끄러운 듯 더욱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만 있었다.

"대옥 누이,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야" 혼례식날은 신부가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 잘 아는 사이잖아. 그러니
이제는 말을 해도 돼. 우리 둘만이 있는데 뭐"

"네"

신부가 들릴락말락 희마한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보채는 보옥이 자꾸만 자기를 대옥 누이라고 부른 것이 견디기 힘들어
금방이라도 신방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집안 어른들이 당부한 말씀이
있어 꾹 참고 있었다.

보채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금의 인연이 보옥의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어려움도 감당을 해야만 하였다.

아니, 어쩌면 보옥의 정신이 혼례를 치르는 동안 온전히 돌아왔는지도
몰랐다.

보옥이 이번에는 신부의 옷을 하나씩 벗겨나갔다.

옷을 벗겨나감에 따라 옷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는 사향의 향기가
보옥의 코속으로 물씬물씬 파고들었다.

이전 같으면 벌써 보옥의 사타구니가 불룩 솟아올랐을텐데 정신이
어려워지고 나서는 머리와 사타구니가 따로 노는 것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