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비단, 붉은 종이 두루마리들이 길쭉길쭉하게 걸려 있었다.
그리고 월노, 즉 달의 늙은이로 불리는 혼인의 신 결린이 그려진 그림도
있고 조화의 신 쌍선이 그려진 그림도 있었다.
대례식이 끝나고 신랑과 신부는 신방으로 들어가 좌상식을 가졌다.
신방에는 침상이 놓여 있고 침상 위에는 휘장이 양편으로 열린 채
드리워져 있었다.
신랑과 신부는 침상 앞에 놓인 주안상을 가운데 두고 앉았다.
방에는 신부의 들러리와 일가친척들이 함께 들어와 있었다.
희봉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대부인과 왕부인도 신방으로 들어와
있도록 하였다.
신부의 들러리들이 먼저 신부의 무겁고 큼직한 붉은 겉옷을 벗겨 잘
개켜서 들고 나갔다.
신부는 이제 하늘하늘한 초록 비단 옷을 입고 한결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너울은 벗지 않고 있었다.
신랑과 신부는 반으로 잘린 바가지 두 조각을 합하여 거기에 합환주를
따라 합근례를 할 때처럼 같이 마셨다.
바가지가 합해진 부분의 틈을 타고 술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보옥은 태허환경에서 경환 선녀와 다른 선녀들과 함께 마시던 만염동배주
생각이 났다.
백 가지 꽃술과 만 가지 나무진에다 기린의 골수와 봉황 젖으로 만든
누룩을 섞어 만들었다는 그 기가 막힌 천상의 술 말이다.
사람들은 신부를 놀리는 우스갯소리들을 한마디씩 하였다.
초야에 신부가 놀림을 많이 받아야 아들 딸 잘 낳고 행복하게 산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놀릴 적마다 신부는 더욱 고개를 숙였다.
술기운이 조금 오른 보옥은 신부의 얼굴을 빨리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래서 신부 곁으로 다가가 너울을 벗기려 하였다.
그러자 희봉이 대부인과 왕부인을 흘끗 쳐다보고 나서 보옥을 말렸다.
"도련님도 참. 이렇게 등불이 밝을 때 신부의 너울을 벗기면 악귀가
신부의 얼굴을 보고 시기가 나서 신부를 잡아간대요.
그러니 침상에 올라 휘장을 내리고 등불을 끈 후에 신부의 너울을
벗겨야 돼요"
"난 신부의 얼굴을 지금 보고 싶단 말이야. 신부 화장을 한 대옥 누이의
얼굴은 얼마나 아리따울까"
보옥이 투정을 부리는 투로 말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벙긋벙긋 웃고
있었다.
"신부의 얼굴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것이 좋단다.
그리고 앞으로 많이 보게 될 텐데 오늘은 희봉 형수의 말을 듣도록
하여라. 악귀가 틈타지 않도록 말이야"
대부인이 점잖게 한마디 하자 보옥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