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뭔가를 뜯어보고 끼워맞추고 하는 것이 좋았다.

이미 국민학교때 저항의 색깔을 보고 몇 옴( )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조립식 키트를 사 라디오를 조립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말하자면 "타고난 땜장이"였다.

장래 희망은 그런 전자제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김용훈사장의 지나온 삶은 이 어릴적 꿈을 향한 한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0년 서울대 공대에 진학할 때도 생긴지 2년밖에
안된 제어계측공학과를 지망했다.

실용적인 학문을 익혀 현실에 써먹고 싶은 욕심때문이었다.

학부과정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너희들이 진정 나라에
기여하는 길은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현실산업에 접목시키는 일"이라며
학생들에게 사업의 길을 권하던 교수를 지도교수로 택했다.

학교에서는 영상처리기술을 전공했다.

졸업후 잠시 서울대 병원 의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전자내시경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마음이 맞는 6명의 학교선후배들과 "건인"이라는 벤처기업을 세워
3년간 일했다.

골프스윙교정기를 개발한 그지만 골프채는 쥐어 보지도 못했다.

골프 뿐 아니라 운동이라곤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다.

아예 취미가 없다.

오직 일하는 것 뿐이다.

지난 86년 5년간 사귀던 첫사랑의 아가씨와 결혼해 지금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