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가장 중요한 식량인 곡물이 지난 몇십년 동안에 보여준 생산
추이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1950~84년의 세계 곡물생산량은 2.6배나 늘어나 인류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증가세를 나타냈다.
그것은 세계의 인구증가율을 큰 폭으로 앞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84년 이후로는 연평균 곡물증가율이 1% 이하로 떨어져 인구
증가율에 훨씬 못미치게 되었다.
그 결과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세계 총인구의 거의 5분의1인
10억명에 이르는 사태를 낳았다.
그러한 곡물부족현상이 해가 갈수록 더욱더 심화되어 갈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그동안의 곡물증산은 농업의 기계화, 비료 사용의 개선, 신품종의 개발
등으로 이루어졌으나 이젠 그것도 막다른 곳에 오게 되었다.
토질의 퇴화, 새로운 병충해의 발생, 경작지 확장의 한계, 대수풍의
고갈이 그 주된 이유들이다.
앞으로 닥쳐올 최악의 식량부족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인구증가율을
식량증산에 맞춰 둔화시키거나 생명공학 기술을 원용하여 식량을 증산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농작물에 대한 생물공학의 적용은 의학 동물학 미생물학 등의
분야보다 훨씬 뒤져 있는게 현실이다.
특정 농작물의 성질과 관련된 유전자 식별의 어려움, 유전자
전이과정에서 가끔 발생되는 예측불허의 유전적 변수, 조직 배양에 따른
문제 등이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농작물은 잡초와 같이 유전자 조작에 강한 저항을 나타내는가 하면
식물세포에 외부 유전자를 이식시킬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박테리아와
함께 존재할 수 없고 변형된 세포에서 재생되기도 어려운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몇가지 성과를 거둔바 있다.
1983년에는 토마토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잘라낸 다음 다른
유용한 유전자로 대체하여 생산량을 20~30% 증가시켰다.
88년에는 옥수수에 외부 유전자를 이전시키는 실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호주의 한 유전학연구그룹이 모든 잡초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이를 농작물로 전환시키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관심을 끌고 있다.
유전자 조작이 가장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잡초의 농작물화가 이루어
진다면 21세기에 닥쳐올 식량위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