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K은행 회의실.

자금담당자와 영업담당자사이에 입씨름이 한창이다.

주제는 이날 정보통신부가 실시한 1천1백85억원의 예금입찰에 응찰금리를
어느 수준으로 정할 것인지 여부.

"연 13.5%는 써야 한다.

그래야만 1백억원이라도 끌어올 수 있다.

정부부처나 기관들은 중요 고객이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전략적으로 낙찰을 받아야 한다"(영업담당자)

"연 13.0% 이상은 절대 안된다.

지금 시장금리가 연 12%대 초반 수준이다.

연 13%로 가져오더라도 운용할데가 마땅치 않다"(자금담당자)

결국 이날 입씨름은 "언제나 그랬듯이" 영업담당자의 승리로 끝났다.

이런 모습은 비단 K은행에서만 볼 수 있는건 아니다.

모든 은행이 마찬가지다.

과정도 그렇거니와 결과도 똑같다.

나중에야 어쨌든 우선 자금을 확보하고 보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한다.

예금을 받아 대출 등으로 운용한뒤 차액을 챙기는게 은행이다.

돈장사가 손해볼 수는 없다.

연 13.5%라는 비싼 비용을 들여 자금을 끌어왔다면 그 이상을 받고 굴려야
한다.

그러나 채권운용으론 수지를 맞출 수 없다.

그래서 희생양으로 찾아진게 기업이다.

비싼금리를 받고 대출하면 수지걱정은 안해도 그만이다.

한푼의 돈이 귀한 기업로선 금리를 따질 개제가 아니다.

프라임레이트(우대금리)는 연 8.25%수준인데도 대부분 중소기업들은 연
13-14%대의 금리를 물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은행들의 저급한 돈장사기술이 금리하락을 가로막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사실은 각종 경영통계를 들여다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난해 국내 25개 일반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은 0.32%에 불과했다.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ROA(1.17%)의 4분의 1수준이다.

똑같이 1만원의 자산을 굴려 국내은행은 32원밖에 벌지 못한 반면 외국
은행국내지점은 1백17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비교대상을 외국은행으로 확대하면 더 한심해진다.

지난해 영국과 미국은행(상위 7대은행기준)의 ROA는 각각 1.62%와 1.29%에
달했으니 말이다.

다른 지표도 마찬가지다.

직원 1인당 순이익은 미국은행의 5분의1, 일본은행들의 3분의1에 그치고
있다.

외국은행 국내지점에 비해선 11분에 1에 불과하다.

그래도 외국은행수준에 접근한 것이 없는건 아니다.

인건비와 경비가 그것이다.

직원 1인당 인건비는 미국은행들의 2분의1수준이다.

1인당 경비로는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절반가량을 쓰고 있다.

접대비는 일반기업체를 포함한 상위 10개사중 8개(국민 상업 주택 한일
경기 하나 조흥 제일은행)가 은행일정도로 많다.

물론 은행들도 할말은 많다.

"70, 80년대 "산업지원"이라는 명분으로 부실기업을 떠안는 등 온갖
뒤치닥거리를 하다보니 이렇게됐는데 어떻게 은행에만 돌을 던질 수 있느냐"
(박석태 제일은행상무)는 논리도 타당하고 "각종 금융규제에 얽매어 있는데
은행들의 자율경영이 어찌 보장되겠느냐"(위성복 조흥은행상무)는 항변도
일리 있다.

또 최근들어선 금융중개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성과는 별볼일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오히려 "효율적인 자산운용방법"을 추구하기 보다는 "앉아서 장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은행들은 지난해 당좌대출 금리산정방식을 "시장실세금리+알파"로 고쳤다.

최근들어선 기업운전자금(신한은행)과 대기업할인어음 무역어음할인(조흥
상업 제일 한일 외환은행)의 금리도 시장금리와 연계시켰다.

가만히 앉아서 일정액(알파)을 챙기겠다는 심보에 다름아니다.

그런가하면 주식투자에 돈을 쏟아부어 평가손은 4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기 보다는 가장 손쉬운 예대이익에 집착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예금사오기 등 외형경쟁도 여전하다.

그래서 이제는 은행 스스로 새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어서만은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의 호송선단식경영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경영을 유도, 은행도 망할 수 있게 만들어야만이 은행들이 경영
합리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란 논리에서다.

그러자면 은행간 합병유도책마련과 거미줄같이 얽힌 금융규제의 완화가
필수적이다.

"금융규제가 과다하고 중앙은행 및 금융기관의 경제기여도가 낮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우리나라 금융경쟁력을 46위중 40위로
평가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이는 곧 금융중개비용을 줄여야 금융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 금리하락여지도 넓어지게 된다.

이렇게보면 "금융중개효율제고"란 과제의 상당부분은 금융당국의 몫이다.

< 정리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