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통, 코카콜라, 파커, 코닥필름, ...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뛰어난 상품력과 함께 모두 칼라마케팅(Color Marketing)에서도 독보적인
경지를 보여준 기업들이란 점이다.

베네통은 은근하고 점잖던 기업PR광고에 화려한 원색을 도입, 피부색이
다른 전세계인을 자사의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베네통신드롬을 몰고 왔다.

파커는 1920년대 갈색과 검점색 일색이던 만년필시장에서 빨간색 여성용
만년필을 만들어 시장을 석권했다.

코카콜라와 코닥필름은 독특한 색채전략으로 기업이미지를 높인 회사들.

코카콜라는 상표와 팜플렛 등 각종 판촉전략에 빨강색을 도입하여
소비자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했다.

코닥필름의 "노란색"이나 후지필름의 "초록색" 등은 색상만 보아도
해당기업이 연상되는 이미지색들이다.

외국에서는 일찍부터 시도됐던 칼라마케팅이 최근 국내 기업들에게도
도입되고 있다.

화장품 의류 등 전통적으로 색상에 민감한 업종은 물론 가전 자동차
가구 악기 등 모든 제품으로 확산되고 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화려한 의상의 신세대들이나 빨간 냉장고, 파란
세탁기를 서슴치않고 받아들이는 주부 등 영상세대의 소비자를 잡기
위해서는 "튀는 색"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기업마다 다양한 색상이 곧 히트상품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색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려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다양한 색상=히트상품"이란 등식이 반드시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케터들의 고민이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94년 엑센트를 시판하며 "신세대 신감각"이란
슬로건으로 27-30세의 신세대를 집중공략하는 광고전략을 짰다.

차의 색상도 파랑 노랑 연보라 등 이른바 신세대들의 칼라감각을 겨냥한
제품을 내놓았다.

파격적인 색감의 엑센트는 "자동차업계의 색채혁명"이란 찬사를 받으며
씨에로 아벨라 등 경쟁차종의 컬러화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회사는 얼마후 마케팅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공략대상인 신세대는 생각만큼 구매력이 없었고 실제로 엑센트를 구입한
층은 30-35세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는 광고문구를 "앞선 성능, 앞선 기술"로 바꾸고 색상도
안정적인 흰색과 회색 위주로 내놓으며 대중적인 이미지로 선회했지만
이미 거액의 광고선전비를 지출하고 난 뒤였다.

현대자동차의 사례는 칼라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색상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행색" 못지 않게 특정칼라를 좋아하는 소비자층의 규모나 구매력을
예측해야 하고 제품의 성장단계도 고려하는게 필요한 것이다.

색상이 시대를 너무 앞서가도 안된다.

90년대초 OB맥주는 경쟁제품인 "하이트맥주"를 견제하기 위해
"아이스맥주"를 내놓았다.

아이스맥주의 로고칼라는 검정과 은회색이었다.

이러한 색채배열은 디자이너들에게 "시대를 앞선 21세기형 칼라"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철저히 외면됐다.

너무 무겁고 칙칙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은채 "고정색의 파괴"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마케터들은 칼라마케팅에선 "아름다운 색상의 창출"보다 오히려 "색상의
이미지나 소비심리 등 심리적 가치의 창조"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태평양은 지난 93년 "밍크브라운"이라는 유행색을 선언한 뒤 광고및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 립스틱을 1백만개 이상 판매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성공은 이후 화장품업계의 판매경쟁이 시즌별로 "미스티퍼플"
"트로픽오렌지" "재즈와인" 등 유행색을 선언한 뒤 이를 중심으로
색조화장품을 판매하는 칼라마케팅시대로 전환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올해부터 캠페인전략의 주제를 "섹시넘버원" "천년후애"
등 색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잡고 있다.

너도나도 색상을 주제로 판촉경쟁을 벌이다보니 차별화가 안된다는 것이다.

태평양의 전략변경은 칼라마케팅의 핵심이 "색상"보다는 "유행"을 만들어
내는데 있었음을 보여준다.

칼라마케팅의 본질 역시 "칼라"보다는 "마케팅"에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