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멀쩡하던 주거래업체인 H사가 돌연 부도를 내고 도산해버렸기 때문이다.
납품대금으로 받은 어음이 쓸모없는 휴지가 됐을뿐 아니라 당장 직원들의
월급주는 일도 막막하기만 했다.
백방으로 급전을 구하러 뛰어보았지만 제대로 된 담보하나 없는
영세업체에 선뜻 자금융통을 해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자칫하면 정진정밀까지 연쇄부도로 쓰러질 상황이었다.
이때 김사장이 의지한 것이 기협중앙회가 운영하는 공제기금이었다.
김사장은 기협중앙회에 거래업체가 도산했음을 증명하는 서류와
사업자등록증사본등 필요한 서류 몇가지를 구비해 기협에 제출했다.
특별히 대출에 하자가 없음을 확인한 기협은 곧바로 9,000여만원의
자금을 빌려주었다.
정진정밀이 도산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공제기금은 이 회사처럼 거래업체가 부도를 당했을때 연쇄도산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다.
기협중앙회가 중소기업들로부터 일정액의 기금을 받아 적립해 이
기금을 바탕으로 어려움에 처한 업체에 긴급대출을 해주는 것.
여기에는 크게 1호대출 2호대출 3호대출등 세가지 종류가 있다.
(2호, 3호대출은 중 하에서 다룰 예정) 김사장이 이용한 것이 연쇄도산
방지대출로 통하는 1호대출이다.
1호대출은 특히 무담보 무보증 무이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3무대출"로도
불린다.
1호대출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기협중앙회 공제관리부에 공제기금
가입청약서와 사업자등록증사본(원본지참) 및 중소기업은행에
보통예금계좌를 개설한 후 1회분 부금을 입금한 통장등을 제출해야 한다.
월 부금액수는 1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10만원단위로 10가지가 있으며
업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중소업체가 공제기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년이상 사업을 해온 중소기업으로 기협중앙회 회원사이거나 제조업이나
유통업을 하는 도.소매업체이어야 한다.
또 공제기금에 가입한 후 6개월이 지나야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므로 사업을 시작한지 적어도 1년 6개월은 경과해야 공제기금을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대출한도는 부금납부액의 10배까지이며 최고한도는 4억2,000만원이다.
공제기금은 이러한 보험적기능외에 만기(보통 3년6개월)가 되면
일정율의 이자와 함께 원금을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축의 성격도
함께 가진다.
대출자금의 상환기간은 6개월거치 3년으로 3개월마다 한번씩 10번에
걸쳐 원금을 분할해 갚아나가면 된다.
올해 8월말 현재 이 공제기금을 이용한 업체는 모두 9,067개 업체.
이중 87%인 7,880개 업체가 종업원수 50인이하의 영세업체다.
대출금액으로 따져도 총 대출된 2,659억원중 84%인 2,231억원이
이들 50인이하 업체들에 지원돼 중소업체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진정밀의 김사장은 "영세업체들이 담보나 보증없이 그것도 무이자로
1억원에 가까운 돈을 빌릴 수 있기란 결코 쉽지 않다"며 "이런 공제기금
제도가 지금보다 활성화돼 어려움에 처해 있는 많은 중소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재창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