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건설의 이리달 가나 테마프로젝트 현장소장(45)은 2년1개월만인
지난 7월6일 가나땅을 밟았다.

사막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아크라공항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고속도로에
몸을 올렸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꼬박 17시간이 걸렸지만 조금도 피로하지 않다.

"분신"과도 같은 테마현장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을 뿐이다.

시속120km로 질주하는 차창밖을 내다 보면서 갖가지 상념에 젖어든다.

92년6월 사이트 서베이를 위해 미지의 가나를 밟으면서 부터 시작된
시행착오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원및 반장들의 숙소를 마련하기 위해 호텔주인을 만났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이곳을 자주 드나드는 한국선원들에게 시달려온 주인이 코리안이란 소리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고 낯설디 낯선 이국땅에서 텐트를 칠수는 없었다.

다급한 나머지 서울을 몇번 갔다온 적이 있는 발주처의 프로젝트매니저를
찾았다.

호텔을 빌릴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했다.

가까스로 노천바닥신세를 면할수 있었다.

아프리카 첫 프로젝트인 저유소공사현장에서도 우여곡절은 끊이지 않았다.

물건이 없어지기 일쑤였다.

잘못하면 생명까지도 위협 당할 것 같았다.

급기야 돈을 주고 현역군인을 고용했다.

4~5명이 실탄을 장전한 총을 갖고 밤샘 경비를 섰다.

저유소공사 현장 가운데 하나인 북쪽끝 볼가탄가에서의 고생은 이루 말로
표현할수 없었다.

섭씨45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대지를 이불삼아 잠을
청하기 일쑤였다.

채소류를 구하기 위해 간신히 비자를 얻어 이웃 브루키나파스로 넘어가기도
했다.

이같은 악조건하에서도 공사시작 1년6개월여만인 94년 2월 저유소 3기를
건설했다.

첫 개가를 올린 것이다.

여세를 몰아 테마정유공장을 증설하는 공사까지 따냈다.

94년 6월 귀국하여 2년여 동안 본사에서 이 공사계획을 짜왔다.

"아프리카의 사나이"가 테마프로젝트를 아프리카의 걸작으로 만들기 위해
또다시 "제2의 고향"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