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연구소 본관 3층 승용전사설계2팀 사무실에서 이씨를 처음 만난
느낌은 "의외"였다.

외국에서 10대시절을 보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우리말 솜씨,
한국의 신세대 여성보다 더 전통적인 외모.

"저의 이력을 보고 버터기가 채 가시지 않은 어중간한 말투와 노랗게 물든
퍼머머리를 연상하기 쉬운데 전 그런게 싫어요.

한국인답지 못한것 아니예요.

그렇다고 독일인들의 예술적 취향과 미국 사람들의 합리적인 사고방식까지
거부한 것은 아니고요"

이씨는 인근 대학에서 한달에도 몇번씩 음악회가 열리는 독일의 예술적
풍토와 미국의 합리적인 교육제도는 아직도 부럽다고 한다.

누구에게든 "처음"의 인상은 강렬한 법.

이씨와 현대와의 인연도 그렇다.

칼스루허 스쿨의 500명 남짓한 학생중 유일한 비영어권 출신인 이씨를
위해 영어 개인지도를 해준 줄리 프로라이흐 선생님, 그가 들려준 "현대의
엑셀승용차 미국 상륙" 기사는 "소녀 금주"가 한국을 떠난지 2년만에 처음
접한 한국소식이었다.

언제쯤 결혼할거냐고 했더니 "돈이 좀 모이면...", 누구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했더니 "성실한 사람이어야 돼요"라고 한다.

"성실", 이씨와 참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