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규 <한국개발연 연구위원>

현 정부는 규제개혁을 재정개혁 금융개혁과 더불어 제도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규제완화의
실적과 효과에 대한 국민 일반의 평가는"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
규제완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규제완화를 직접 추진해 온 정부로서는 규제완화의 효과가 향후
시차를 두면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기업은 규제완화 시책의 효과와 실적을 평가 절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불편 해소를 위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중소기업가나 자영업자들은 현 정부의 규제완화시책이 친대기업적이라고
비판한하다.

일반 국민들은 일단 대형참사의 영향으로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라는 불안한 시선으로 규제완화를 주시하고 있다.

대학교수 연구원 등 전문가 그룹은 현정부의 규제완화가 미흡한
주된 이유로 소위 "정책적 규제"라 불리는 규제성역의 존재와 통합된
강력한 규제개혁추진체계의 미비를 들고 있으나 다분히 이상에 치우친
느낌을 준다.

물가관리 통화관리 부동산투기억제 수도권인구집중억제 경제력집중억제
등의 시책이 소위 정책적 사안이라 하여 많은 부분 규제완화 대상에서
제외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규제성역에 대한 과감한 규제완화 및 철폐가 국민 일반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면 애초에 규제성역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물가관리 규제완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과연 가능할
지는 지극히 의문스럽다.

재경원의 경제행정규제완화위원회, 총리실의 행정쇄신위원회, 통산부의
기업활동규제심의위원회, 청와대의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 세계화추진위원회
등 현재 정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각종의 위원회 및 작업반을 하나로
통합하여 청와대나 총리실 직속의 독립기구로 발전시킨다고 해서 현재
규제개혁 작업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이 크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통합된 추진체계가 규제완화 관련 작업의 중복성이나 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하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정부규제라고 부르는 것들은 각종 법령에서부터 시작해서
훈령 예규 고시 등에 산재해 있으며 그 분량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인가 허가 신고 특허 면허 등록 승인
등의 형태로 되어 있는 세부규제 하나하나가 규제담당 공무원이나 그 규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피규제자가 아니면 그 내용이나 영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규제완화는 많은 경우 규제담당 공무원의 기득권 포기를 의미하므로
공무원 스스로 규제완화 과제를 발굴하고 대안을 제시할 인센티브가
아주 낮다.

그렇다고 해서 피규제 민간기업들의 의견을 너무 존중하다 보면
그들의 이기적인 목표에 규제완화 시책이 좌우되면서 정부의 고유기능
실종현상이 나타날 위험이 있다.

결국, 규제를 가장 잘 아는 규제담당 공무원에게 규제완화 작업을
맡길 수밖에 없다면 문제는 어떻게 하면 공무원들의 규제완화 인센티브를
높일것인가로 귀결되는데, 최근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규제예산"제도가
그 해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규제예산제도의 핵심은 정부규제가 민간에게 부담시키는 비용을
계량화해서 정부예산을 집행하듯 규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정부규제는 그 비용을 민간이 부담하기 때문에 정부는 예산집행상의
어려움을 피할수 있고,따라서 규제남용의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규제예산제도를 통해 규제가 낳는
총비용을 규제하고, 동시에 부처간 규제예산 확보경쟁을 시켜야 한다.

이러한 경쟁은 규제의 상대적 비용을 밝히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각각의 규제가 낳는 비용을 대강이나마 계산해서 합치게 되면 현재의
규제예산 총규모를 짐작할수 있다.

정부는 규제예산의 총규모를 제한하고 부처별 규제예산 삭감을 통해
효과적인 규제완화를 실시할수 있게 된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사항 중의 하나는 규제예산의 부처내 전용을
허락해 주는 것이다.

꼭 필요한 신설규제가 있다면 정부 각 부처는 주어진 규제예산 규모내에서
교과적인 규제운영을 위해 불요불급한 규제의 완화나 철폐를 통해 규제
예산을 확보하려 들 것이다.

지금 정부는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을 중심으로 경제법령에 나타난
3,300여건의 규제조항의 개폐작업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이 작업을 보다 발전시켜서 규제의 전수조사와 더불어 규제비용을
대강이나마 계산할수 있다면 규제예산제도 도입의 전제조건은 만족된
것이나 다름없다.

만일 규제예산제도의 도입과 집행이 기존의 각종 규제완화위원회
작업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면 재경원 예산실 인력의 사용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규제담당 부처가 신청한 규제예산에 기초해서 예산실에서 규제예산을
작성.집행한다면 기존의 각종 위원회는 예산 작성.집행의 조언자 내지는
감시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