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 투신사 미 피델리티, 스타급 펀드메니저 대거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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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의 투자신탁회사 미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에 "투자두뇌 유출"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6월 세계 최대 펀드인 마젤란펀드의 매니저 제프리 비닉이 사임한지
2개월여만에 이번에는 또다른 간판급 매니저 로버트 베크위트가 피델리티를
떠났다.
피델리티의 에셋 매니저 펀드의 매니저였던 베크위트는 내달부터 피델리티
의 라이벌 업체 골드만삭스로 자리를 옮긴다고 밝혔다.
베크위트만이 아니다.
최근 2~3년새 피델리티를 떠난 스타급 매니저들은 줄잡아 5~6명에 달한다.
이머징마켓 채권형 펀드를 주무르던 로버트 시트론은 타이거 매니지먼트로
최근 적을 옮겼다.
고정수익증권 투자를 요리하던 톱스테판시는 지난 95년초 채권형 펀드
운용실적 악화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주식형 펀드매니저로 명성을 떨치던 마이클 고든은 비닉과 동업하기 위해
피델리티를 등졌다.
이들은 하나같이 90년대초에서 중반사이 세계증시를 누비던 펀드매니저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이런 투자인재들의 대거 이탈사태는 피델리티의 철저한 "신상필벌"형
경영 때문.
피델리티는 "펀드는 젊고 공격적인 매니저에게-"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펀드 운용실적이 1년이상 "낙제점"을 받으면 어떤 매니저라도 "옐로카드"를
받는다.
그후 3개월간의 유예기간동안 실적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지 못하면 영락없이
"아웃"이다.
쫓겨나든 제발로 걸어나가든 어쨌든 피델리티를 떠난다.
베크위트의 이직도 이 "공식"대로였다.
명문 MIT대 출신인 베크위트가 피델리티와 인연을 맺은것은 지난 86년.
공학도답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투자를 결정하는등 개성파
매니저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94년 이머징마켓의 채권시장에 크게 베팅했다가 쓴맛을 봤다.
멕시코 페소화사태등이 겹치면서 펀드자금의 6.6%를 날렸다.
1년이 지나도록 비크위트의 성적은 바닥수준을 맴돌았다.
그후 정확히 3개월만인 지난 3월,베크위트는 매니저 자리를 박탈당했다.
여기서 쫓겨난뒤 피델리티의 포트폴리오 자문서비스에서 고객들에게 투자
전략을 자문해 주다가 이번에 피델리티를 떠나게 된 것이다.
"미증시에 대한 영향력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에 이어 두번째"라던
세계적인 큰손 비닉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잠깐의 판단실수로 매니저로서의 생명이 오가는게 투자업계다.
그중에서도 피델리티는 단연 "비정한" 회사로 꼽힌다.
요즘처럼 변덕스런 세계증시속에서 피델리티의 펀드매니저로 살아남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관계자들의 푸념이 허풍만은 아닌 것 같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9일자).
줄을 잇고 있다.
지난 6월 세계 최대 펀드인 마젤란펀드의 매니저 제프리 비닉이 사임한지
2개월여만에 이번에는 또다른 간판급 매니저 로버트 베크위트가 피델리티를
떠났다.
피델리티의 에셋 매니저 펀드의 매니저였던 베크위트는 내달부터 피델리티
의 라이벌 업체 골드만삭스로 자리를 옮긴다고 밝혔다.
베크위트만이 아니다.
최근 2~3년새 피델리티를 떠난 스타급 매니저들은 줄잡아 5~6명에 달한다.
이머징마켓 채권형 펀드를 주무르던 로버트 시트론은 타이거 매니지먼트로
최근 적을 옮겼다.
고정수익증권 투자를 요리하던 톱스테판시는 지난 95년초 채권형 펀드
운용실적 악화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주식형 펀드매니저로 명성을 떨치던 마이클 고든은 비닉과 동업하기 위해
피델리티를 등졌다.
이들은 하나같이 90년대초에서 중반사이 세계증시를 누비던 펀드매니저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이런 투자인재들의 대거 이탈사태는 피델리티의 철저한 "신상필벌"형
경영 때문.
피델리티는 "펀드는 젊고 공격적인 매니저에게-"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펀드 운용실적이 1년이상 "낙제점"을 받으면 어떤 매니저라도 "옐로카드"를
받는다.
그후 3개월간의 유예기간동안 실적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지 못하면 영락없이
"아웃"이다.
쫓겨나든 제발로 걸어나가든 어쨌든 피델리티를 떠난다.
베크위트의 이직도 이 "공식"대로였다.
명문 MIT대 출신인 베크위트가 피델리티와 인연을 맺은것은 지난 86년.
공학도답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투자를 결정하는등 개성파
매니저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94년 이머징마켓의 채권시장에 크게 베팅했다가 쓴맛을 봤다.
멕시코 페소화사태등이 겹치면서 펀드자금의 6.6%를 날렸다.
1년이 지나도록 비크위트의 성적은 바닥수준을 맴돌았다.
그후 정확히 3개월만인 지난 3월,베크위트는 매니저 자리를 박탈당했다.
여기서 쫓겨난뒤 피델리티의 포트폴리오 자문서비스에서 고객들에게 투자
전략을 자문해 주다가 이번에 피델리티를 떠나게 된 것이다.
"미증시에 대한 영향력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에 이어 두번째"라던
세계적인 큰손 비닉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잠깐의 판단실수로 매니저로서의 생명이 오가는게 투자업계다.
그중에서도 피델리티는 단연 "비정한" 회사로 꼽힌다.
요즘처럼 변덕스런 세계증시속에서 피델리티의 펀드매니저로 살아남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관계자들의 푸념이 허풍만은 아닌 것 같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