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에 살면 앞이 탁, 트일 것 같더니
승강기를 탈 때마다 앞이 막힌다
막막한 고층들
높은 것은 늘 막막하기만 할까
''얘야, 넌 높은 사람 되거라. 세상에는 헛자리가 너무 많구나''
아버지 벌써 내려가신다
왠지 높은 것들이 지겨워졌다
생이 지루해졌다
난 함부로 올라가지 않을 테다
높은 것만이 최고는 아닐 테지
아래로 내려와서야 평지가 편안하다고 나는 말한다
이제 겨우 한 층을 지나온 것이다 이제 겨우!
웬 겸손이냐고 높은 자리는 올라보는 것이라고
양보가 미덕인 시대는 물건너갔단다
고층을 한번 더 올려다본다
언제부터 위층은 아래층을 눌렀을까
저 고층의 표정은 무표정이다.
그것들도 감추고 싶은 것이 분명 있는 것이다
저 고층의 유일한 버팀은 완강함이다
고층만이 고고한 무엇이라는 듯이
오늘따라
하늘이 네가? 하며 드높다

''문학사상'' 8월호에서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