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의들이 귀비를 치료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지만 담이 목까지
가득 차서 약이 식도로 넘어가지 않았다.

할수없이 태의들이 통관제를 써서 목을 뚫어보려고 했으나 그것마저
효과가 별로 없었다.

대부인과 왕부인이 침전으로 들어가니 귀비 원춘은 일어나 앉거나
말을 하지도 못하고 드러누운 채 입으로 침만 흘리고 있었다.

목에 들어찬 담 때문에 침도 삼킬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대부인과 왕부인이 눈물을 비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귀비 원춘을
여러 가지 말로 위로하였지만 원춘은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얼굴빛이
흙빛으로 변해가면서 눈만 껌벅거렸다.

얼마 후 다른 귀비들이 병 문안을 온다는 기별이 있었다.

그러자 태감들이 대부인과 왕부인에게 침전에서 물러나 별궁에서 쉬도록
하라고 권하였다.

대부인과 왕부인은 원춘의 병이 위중한 것을 알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물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별궁으로 나온 대부인과 왕부인이 안절부절못하며 근심에 싸여 있는데
저녁 무렵 태감 하나가 달려와 비통한 목소리로 전하였다.

"귀비님께서 훙서 하셨습니다"

"아이구 내 손녀야"

대부인이 먼저 구들 위로 주저앉았다.

왕부인은 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어미로서 억장이 무너져 내렸지만
대부인이 쓰러지는 마당에 자기마저 자세를 흩뜨릴 수 없다고 마음을
먹고 이를 악다물며 슬픔을 참았다.

왕부인이 대부인을 부축하여 가마에 올라 집으로 돌아오니 가정을
비롯한 집안 사람들이 다 몰려나와 양쪽으로 나누어 서서 슬피 울고
있었다.

특히 보옥은 누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제정신이
아닌 듯 혼뜬 얼굴로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늘 차고 다니던 통령보옥을 지금 차고 있지 않은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궁중의 상례법에 따라 귀비 원춘의 장례식이 다 치러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보옥이 자기 목에 차고 다니던 통령보옥이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습인을 비롯한 시녀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보았으나 통령보옥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집안의 가보처럼 아끼던 물건이 감쪽같이 없어졌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귀비 원춘의 혼백이 저 세상으로 가면서 보옥의 목에서 통령보옥을
채간 것이 아닌가 하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보옥 자신도 언제부터 통령보옥이 없어졌는지 기억을 할 수 없었다.

누나 원춘의 별세 소식을 듣고 달려나올 때 통령보옥을 어디에다 두고
나온 것인지, 그 전에 이미 잃어버린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