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실수로 짝의 공책을 갖고온 소년이 숙제를 못하고 있을 친구가 걱정돼
밤늦도록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별스런 사건이나 극적 반전도 없지만 아이들의 맑은 심성과 우정이
유년의 책갈피처럼 잔잔하게 펼쳐지며 오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타포는 주인공 아마드가 친구를 찾아가는
언덕길 위의 나무 한그루.
시인 스흐랍 세페리의 시 "친구가 머무는 곳"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나무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우거진 오솔길이 있지/산의
환영보다 더욱 푸른 곳/그곳의 사랑은 진실의 깃털만큼이나 푸르구나"
이란문학에서 나무는 우정의 상징.
감독은 이 시의 이미지를 한 폭의 풍경화처럼 서정적인 영상미학으로
형상화했다.
언덕에 지그재그로 난 길은 소년의 "짧고 긴 여정"을 회화적인 이미지로
전달한다.
특히 아마드가 푸른 올리브숲을 가로지르는 장면, 창 무늬에 비치는
저물녁의 골목길, 다음날 울상이 된 네마자데에게 건넨 공책 갈피의
꽃 한송이는 현실과 몽환의 세계를 시적으로 담아낸 백미.
영화속에는 숙제를 강요당하면서 끊임없이 집안일과 잔심부름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예전방식을 고집하는 어른들의 관습, 급변하는
세태속에서 옛것을 간직하려는 이란사회의 갈등이 밑그림으로 채색돼 있다.
감독의 연출기법도 인상적이다.
그는 정해진 대사나 세세한 동작을 지시하지 않고 본래 모습을 찾아낸다.
카메라를 고장낸 일을 회상시켜 선생님께 야단맞는 짝꿍을 그리고,
숫자암산으로 아마드의 걱정스런 표정연기를 유도하는 등 순간적인
감정포착의 명수다운 기량을 한껏 보여준다.
( 17일 동숭시네마텍 개봉 예정 )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