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K(코오롱패션산업연구원)디자인전공 3학기에 재학중인 김희성씨(23).

그의 일과는 매일 오전9시 마네킹과 패턴이 가득한 학원 실습실에서 시작
된다.

하루종일 연필과 줄자, 가위를 들고 스타일화를 그리고 패턴을 잘라내다
보면 어느덧 오후9시.

방학중에도 그의 작업은 변함없이 진행된다.

그가 이곳에 입학한 것은 95년 봄.

경원전문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한 직후였다.

학원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꼭 패션을 공부하겠다"는 열의에 찬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

학교 다닐 때는 코디네이션을 배우러 다니던 자신이 "무척 튀는 케이스"
였는데 이곳에서는 아주 평범한 수준이었다.

결혼후 입학한 27세 여자선배, 대기업을 그만두고 들어온 30세의 남자선배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수업료가 한학기 130만원으로 높은 편이지만 현장경험이 풍부한 강사진
에게 4년제대학 수준의 내용을 2년만에 배우기 때문인지 대부분 별다른
불만이 없어요. 과제가 많고 고되서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죠"

김씨가 요즘 열중하고 있는 것은 취업에 대비한 포트폴리오 제작이다.

졸업후 가고 싶은 곳은 "윈" "오브제"등 캐릭터가 강한 중소 브랜드.

열심히 해 디자인실장이 되는 것이 꿈이다.

신원 "모두스 비벤디" 디자인실 박성애 주임디자이너(30)는 8년 경력의
중견.

대학(건국대 의상학과) 4학년때인 89년말 실무를 시작, 현재 캐주얼
"지크"를 만들고 있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중에는 3년정도 실무를 익힌뒤 유학가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그의 경험에 비춰보면 디자인해서 옷이 나오는 과정을 제대로 익히는데
5년은 걸렸다.

자기 스스로 일을 해내려면 스타일화그리기에서 제작, 코디네이션, 판매
까지 생각해야 하는데 첫 2년은 선배들을 돕는 수준이었던 것.

현재 "지크"팀의 실질적인 선장인 그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

근무시간이 평균 12시간인데다 신제품 출하때면 더욱 바쁘고 또 카탈로그
제작을 위해 자주 출장을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것이 신난다고.

지난해 런칭한 브랜드가 상승세를 타고 있고 팀분위기가 좋은데다 일도
손에 익었기 때문.

여러 설문조사를 통해 20대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꼽힌 패션
디자이너.

"꿈을 표현하는 전문직"이라는 장점 때문에 많은 여성이 지망하고 있으며
이 점은 이미 활동중인 디자이너의 경우도 마찬가지.

대학의 패션디자인 관련학과에서 남성의 수는 전체의 10%선.

전문학원의 경우에는 MD(머천다이징,영업차원의 제품기획)직에 많이 몰려
그 비율은 10~17%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이신우 진태옥 이영희 김영주 김동순씨등 외국 유명컬렉션에
참가중인 국내의 대표디자이너는 대개 여성이다.

또 내셔널브랜드에는 남자디자이너가 거의 없다.

패션디자이너는 전체의 90%가 여성인 대표적인 여성우위직종인 셈.

출발 당시 별다른 남녀차별을 경험하지 않는 이 분야 종사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이상과 현실의 격차.

디자인전공자의 진로는 크게 5가지.

대기업내셔널브랜드, 디자이너브랜드, 프로모션기획사, 대규모시장, 자영
의상실이 그것이다.

내셔널브랜드는 급료 안정성등의 이유로, 디자이너브랜드는 유명전문가
밑에서 보다 개성있는 작품을 만들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인기가 높다.

그러나 "창의성을 눌러야 하는 것이 싫다"거나 "도제수련기간이 너무
길다"고 느끼는 이들은 "소규모프로모션사가 더 전망있다"고 말한다.

프로모션사란 1~5명의 디자이너가 팀을 구성해 제품을 기획하고 하청생산을
해 큰 업체에 납품하는 형태.

자기가 원하는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면 실질적으로 그 옷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장점이다.

최근 전공자의 급증으로 취업문제도 현안으로 떠올랐다.

95년 졸업자 1만5,000명의 13%만이 디자이너로 취직했다(패션협회 통계).

이에 따라 관계자들은 "배우는 단계에서부터 보다 세분된 분야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에스모드 서울의 함유선실장은 "예전에 부차적인 일로 인식되던 모델리즘과
실무직인 MD지망자가 증가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