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는 화려한 산업은 아니다.

생산제품이 대부분 중간재여서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별로 없고
조용히 자기 영역을 개척하는 경향이 짙다.

매스컴의 조명을 받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점차 바뀌고 있다.

한솔제지와 신호그룹이 기업인수합병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제지업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경영자들도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업계를 이끄는 경영자로는 신호그룹의 이순국회장과 한솔제지 구형우사장,
계성그룹 최낙철회장, 무림그룹 이동욱회장,한국제지 이연기사장,
유한킴벌리 문국현사장, 동해펄프 최병면사장등이 꼽힌다.

<>.지난해 2월 유한킴벌리 사장에 문국현부사장이 발표되자 회사임직원은
물론 제지업계도 놀랐다.

20여년동안 회사를 이끌어온 이종대사장의 후임으로 4명의 부사장중 가장
경륜이 적은 문부사장이 승진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였다.

당시 나이는 46세.

대주주인 유한양행과 킴벌리클라크는 50대 부사장들을 제치고 가장 젊은
그를 과감하게 발탁했다.

그는 일에 대한 집념이 강하고 세련된 매너를 자랑한다.

하지만 가장 돋보이는 강점은 외국어실력.

외대 영어과 출신으로 거의 현지인 수준의 영어를 구사한다.

본인은 "영어가 내 입속에서 고생한다"며 겸손해하지만 그의 출중한
영어실력은 합작선과의 업무협의에 절대적인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설비확대 매출증대에 나서는 것은 물론 환경보호운동에도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기업은 존재가치가 없다"는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신호그룹 이순국회장은 제지업계가 낳은 걸출한 경영인중 하나이다.

"부실기업인수의 대명사" "마이더스의 손" "경영의 귀재"등 다양한
별명을 갖고 있으며 경영난에 처한 기업을 인수해 살려내는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77년 온양팔프 관리인으로 본격적인 기업경영에 나서 20년이 채안돼
계열기업체 30개의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계열사중 10여개가 법정관리기업이나 부도기업을 인수해 정상화시킨
것이다.

젊은 세대와 어울리기 위해 집에 노래방기기를 설치해놓고 "이브의
경고"를 연습하기도 하며 종종 직원들과 사우나를 즐기기도 한다.

골프는 거의 안하는 대신 1년중 1주일을 제외하곤 술을 마실정도로
음주를 즐긴다.

술은 각 방면의 사람들과 친교를 맺는데 매우 좋다는게 이유다.

그의 경영비법은 정부정책과 금융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입에 떠 넣어주길 기다리기 전에 부지런히 좇아 다니며 정부정책과 각종
금융지원제도를 기업경영에 십분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는 2001년 그룹매출 8조원을 달성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지난달말 계성제지 창업 30주년을 맞아 기념사를 하던 최낙철
계성그룹회장의 눈엔 이슬이 맺혔다.

지난 30년동안의 보람과 고생이 한순간 주마등처럼 스쳐갔기 때문이다.

육사입교 소령예편 계성제지창업 남한제지및 풍만제지인수등 의욕적인
사업확장과 경영난을 거쳐 재기하는등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인생역정이 되살아났다.

육사 12기로 임관, 10년동안 군에 근무한뒤 예편하고 66년 계성제지를
창업했다.

그는 육사동기생은 물론 선후배가 휴가를 나오면 마다않고 술대접을
할 정도로 통이 크고 선이 굵어 이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었다.

장치산업이어서 장기 승부를 걸어야 하는 제지산업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기질과 통한다.

80년대엔 전성기를 맞아 사세가 급신장했다.

남한제지와 풍만제지를 잇따라 인수, 국내 3대 제지그룹으로 키웠다.

94년엔 업체간 과당경쟁으로 기업이 경영난에 봉착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올해는 창업 30주년을 맞아 2000년을 향한 제2의 창업을 선포하고
미래상을 발표하는등 대대적인 도약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연기한국제지사장은 현장중심으로 기업경영을 하는 전문경영인이다.

서울대 상대를 나와 70년에 한국제지에 입사, 24년만에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제지에 몸담으면서 각부서를 두루 거쳤고 이 과정에서 생산과
영업 등 현장근로자들의 열성없이는 품질향상과 판매신장이 어렵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

현장중시 경영을 직접 실천하기 위해 그는 분기별로 이틀씩 공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생산직 근로자와 똑같이 근무한다.

작업반장의 지시를 받고 식당에서 줄을 서서 배식을 받는등 현장의
애로와 건의를 몸으로 체득한다.

그는 또 철저한 전문화를 추구한다.

제지업계에서 유행하는 사업다각화를 마다하고 전문화를 심화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국제경쟁력을 갖추는데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온산공장의 초지 2호기를 건설, 국제수준의 인쇄용지
생산능력을 갖췄고 98년까지 3호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또 고부가가치 종이를 만드는 일에 전력을 쏟아 경량아트지 로열아트지
등을 개발한데 이어 고급종이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구형우한솔제지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제지업계의 간판
전문경영인이다.

한솔제지에 약 30년동안 근무하면서 말단직원에서 사장으로 올랐고
지금은 한솔제지사장이면서 한솔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는 그룹의 대주주인 이인희고문이 경영권의 대부분을 위임하고
있어서이다.

이같이 신임을 받는 것은 출중한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다
국제감각도 뛰어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솔이 삼성에서 분리 독립한 91년이후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기업의
과감한 인수와 사업확장을 주도, 한솔의 경영능력이 삼성보다 낫다는
청출어람의 신화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최근엔 단군이래 최대의 사업이라는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내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의 강점은 강력한 리더십.

"경영자의 가장 큰 덕목은 어려운 목표라고 해도 종업원들에게 이를
돌파할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는 일"이라며 이를 몸소 실천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동욱무림그룹회장은 창업주인 부친 이무일회장이 타계한 89년부터
그룹의 경영을 이끌고 있다.

2세 경영인으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과감한 사업확장과 다각화로
21세기에 대비한다는 의욕적인 전략을 짜고 있다.

연대 경영학과를 졸업한뒤 73년부터 무림제지에 입사, 16년동안 철저한
경영수업을 쌓아 경영에 자신감을 얻은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무림 2000"이라는 중장기계획을 통해 제지와 함께 레저산업을
양대축으로 그룹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검은색 싱글정장을 즐기는 그는 옷차림처럼 빈틈없는 전략수립과
과감한 도전을 통해 무림그룹을 도약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런 적극적인 성격때문에 아직 40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지난해
제지연합회 총회를 앞두고 유력한 회장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최병면 동해펄프사장은 펄프전문가이다.

그는 연대 정외과를 나와 충주비료를 거쳐 77년 동해펄프의 관리과장으로
입사, 지난해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른 전문경영인이다.

펄프와 18년동안 고락을 같이 했고 미국 현지법인인 DPI사장을 역임한
만큼 국내외 펄프수급과 가격동향에 대해 뛰어난 분석력을 갖고 있다.

지난 94년봄 펄프가격이 폭락, 동해펄프가 부도설에 휩싸이는등
어려움에 처했을때도 그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담하게 채권자들을
설득했다.

곧 펄프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고 그러면 동해펄프의 경영난도 금방
해소된다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오히려 주변사람들에게 동해펄프 주식을 사두면 돈벌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 얼마 있지 않아 펄프값은 사상유례없이 폭등하기
시작해 동해펄프는 어려움에서 벗어났고 주가는 5배이상 뛰기도 했다.

그는 조지아퍼시픽 인터내셔널페이퍼등 외국 굴지의 펄프업체들의
생산 수출 재고 공장가동률과 주요국가들의 수요동향을 꿰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