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전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우리나라도 이제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돌입했다.

이에 즈음하여 한층 더 높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가꾸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소비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독버섯처럼 뽑히지 않고 남아 있는 문제도 있고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는
문제도 있다.

각종 불량식품의 난무는 여전히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허위광고, 가격올려받기, 얄팍한 상술, 강매 등 각종 불공정 상행위가 전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환경오염이나 환경파괴는 엄청난 도전으로 우리를 짓눌러 오고
있다.

우리들이 소비하는 많은 상품들은 생산 과정에서 또는 소비된후 다량의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함으로써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불량상품이나 불공정행위는 상품을 사는 소비자들에게만 피해를 주지만
이와 같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상품의 소비는 우리소비자 전체에게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에게는 생존에 관한 문제를
던진다.

물론 이런 환경문제는 소비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기업의 책임도 매우 크다.

그러나 기업이 예컨대 일회용품과 같이 환경을 파괴시키는 상품을 생산하는
이유는 결국은 우리 소비자들이 이런 상품을 사주기 때문이다.

우리 소비자들이 높은 환경의식과 지식을 가지고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상품의 소비를 자제한다면 기업도 그런 상품을 생산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환경도 그만큼 더 깨끗해질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의 소비는 간접적으로 환경오염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에너지소비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한정된 지구의
화석자원을 고갈시키고 있고 생활하수나 자가용자동차 배기가스가 우리
대도시의 수질오염과 대개오염의 수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결국 오늘날의 환경문제는 우리의 환경이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이상으로
우리의 상품소비가 과다해졌기 때문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가입을 열망하고 있는 OECD의 선진국에서는 소비자들의
소비형태를 환경친화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환경문제의 근원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아래 환경정책의 방향을 크게 수정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소비는 이와 같이 우리 생의 터전인 환경을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우리의 인간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돈독한 인간관계 대신에 상품의 숲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그러다 보니
상품의 소비가 곧 행복이라는 착작이 우리 사회에 번져 가고 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 걱정하는 금전만능주의나 생명경시 현상도 이런 착각과
결부된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의 소비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충동구매 과시
구매 모방구매 등은 엄청난 자연자원의 고갈과 환경파괴라는 값비싼 희생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물질적 풍요속에 아직도 최저생계 수준에서 허덕
이는 수많은 가난한 이웃들의 눈물과 소외 위에 이루어지는 소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이 오늘 날의 상품소비와 결부된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누가 해결할 것인가?

이 문제의 해결을 결코 기업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기업이 환경친화적이 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윤추구
역할에는 원초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정부에 가져가봐도 별 신통한 해결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정치가들 자신이 인정했다시피 우리의 정치는 3류 정치이고 우리 정부는
원래부터 무척 관료적이고 정직적인데다가 요즈음에는 매우 비능률적이라는
비난까지 겹쳐서 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 솔직히 만하면 우리의 정치가 3류 정치가 된 것은 궁극적
으로는 정치가를 우리의 대표로 뽑았던 우리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 때문
이였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정치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시민들이 선거권을 현명하게 행사
해야 하듯이 환경의 오염문제나 정신의 오염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소비자들이 크게 깨달아 현명한 소비행태를 선택하고 유지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흔히 시장경제는 소비자 주권자의 체제라고 말하지마는 돌이켜 보건대
우리 소비자는 세대로 주인답게 주권을 행사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 소비자들이 떨쳐 일어나서 참으로 주인답게
주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흔히 21세기는 환경의 시대라고 한다.

그 만큼 앞으로 환경문제가 더욱 전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 것임을 시사한다.

이 인류공동의 문제인 환경문제에 범지구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가 천명한 지속가능발전의 원칙은 우리에게 환경의 수용
능력 범위 안에서 소비활동을 영위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충동구매니 과시구매, 모방구매 따위들은 그 좋고 나쁨을 떠나 하나밖에
없는 이 지구에서는 도대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절박한 인식이 지속
가능발전 원칙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환경의 시대는 더 이상 소비를 미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지구상에 지속가능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소비자들은
환경에 미칠 영향을 깊이 의식하는 소비생활과 소비문화의 추구를 제1차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는
소비, 가난한 우리 이웃과 함께하는 소비, 이러한 소비를 통틀어서 녹색
소비라고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이제 1인당 국민소득 1만불 시대에 부합
하는 소비문화의 창달은 이 녹색소비의 구현을 위한 지혜와 실천을 핵심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