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일자) 신뢰 회복이 정치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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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다, 안전사고 연속이다, 중앙-지자체간 갈등 심화다...
저 아우성에 진작 팔을 걷고 나서야 할 처지에 끄떡 않는 강심장,
무노무임이 야단인데 세비를 어느새 두달치나 타느냐는 비난에 요지부동인
직업인의 집합소가 어딘가.
총선 끝난지 석달, 첫 소집하고 한달이 되도록 새 의원이나 정당들의
소행에 실망에 지쳐 포기상태에 이른 듯이 국민은 사뭇 무반응이다.
그럴 만도 하다.
협상을 한답시고 상식만 가지곤 이해하기 힘든 말꼬리 잡는데 꼭 한달을
허송한 국회가 이제 원구성을 한다고 해서 "아이쿠 잘한다"고 박수칠 엄두가
안난다.
상임위나 특위의 정당간 구성비를 놓고 시비가 없을수야 없다.
하지만 사람 빼간 측의 소위 "유감" 표명 방법을 둘러싼 말장난이라든가,
검.경 중립화의 표현을 둘러싼 그 지루한 줄다리기를 지켜봐야 하는
국외자들은 한마디로 불쾌해 견디기 힘들었다.
중립성 제고 대상이 "선거관리와 단속 공직자"건, "여-야가 제기한 선거
관련 공직자"건 그리도 버틸만큼 다른게 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글자하나 지지 않으려고 서로 물고 물리는 저의를 모르는 바 아니다.
본격적인 입법과정에서의 유리한 입지선점 의도임을 안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에서 총무들이 설령 도토리 키재기로 투닥거린다
하더라도 당 최고 지도부가 지도부다우면 모양새는 훨씬 달라진다.
문제는 이 장기 정쟁이 명분을 앞세운 실리의 대립이라는데 있다.
선거의 부정조사나 제도개선, 검.경 중립성제고 등 그 모두가 그렇게
하고 안하고에다 서로 다른 명분을 세우지만 진짜 속내 이유는 그로
말미암아 이해가 어긋나기 때문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휩쓸려 간과하기 쉬운 점을 우리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모든 현안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이해관계의 주체가 실제로
누구인가를 바로 구명해야 한다.
이념정당 아닌 현 여-야 각당이 추구할 이익은 마땅히 당원 내지 지지
국민의 이익이어야 한다.
좀더 솔직해 보자.
과연 15대 국회벽두의 진통이 말그대로 신한국당 국민회의 자민련이란
정당 자체와 지지 국민의 이해 때문인가.
아니면 언제나 처럼 어느 소수 특정인들의 끝 모르는 욕망과 그것을
받들어야 지위를 유지 강화하는 붕당의 이해 때문인가를 우리는 바로 보고
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개원협상의 그 많은 우여곡절을 들여다볼 때도 근본에 있어 그 바탕은
수십년 일관한 예의 속성임을 알게 된다.
중핵은 3김의 대권욕이요, 나아가 그것에 도구적으로 봉사토록 위치 매겨진
지역대립이 배경으로 존재한다.
여기 부수적인 현상이 있다면 차기,차 차기를 겨냥하는 제2 제3 야망가들의
분파작용 촉진 개연성이다.
물론 철저히 게임의 룰을 존중하는 공개경쟁 전통 아래 야망을 가진 자는
그것을 불태울수 있어야 민주사회다.
그것의 무한정 지연 역시 종국적으론 3김 탓이다.
원구성의 추한 감투싸움이 국민을 더 이상 실망시키면 낭패다.
늦었지만 산적한 국사를 효율적으로 처리,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보여주는
일은 급하다.
그 첫발이 잘 나가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4일자).
저 아우성에 진작 팔을 걷고 나서야 할 처지에 끄떡 않는 강심장,
무노무임이 야단인데 세비를 어느새 두달치나 타느냐는 비난에 요지부동인
직업인의 집합소가 어딘가.
총선 끝난지 석달, 첫 소집하고 한달이 되도록 새 의원이나 정당들의
소행에 실망에 지쳐 포기상태에 이른 듯이 국민은 사뭇 무반응이다.
그럴 만도 하다.
협상을 한답시고 상식만 가지곤 이해하기 힘든 말꼬리 잡는데 꼭 한달을
허송한 국회가 이제 원구성을 한다고 해서 "아이쿠 잘한다"고 박수칠 엄두가
안난다.
상임위나 특위의 정당간 구성비를 놓고 시비가 없을수야 없다.
하지만 사람 빼간 측의 소위 "유감" 표명 방법을 둘러싼 말장난이라든가,
검.경 중립화의 표현을 둘러싼 그 지루한 줄다리기를 지켜봐야 하는
국외자들은 한마디로 불쾌해 견디기 힘들었다.
중립성 제고 대상이 "선거관리와 단속 공직자"건, "여-야가 제기한 선거
관련 공직자"건 그리도 버틸만큼 다른게 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글자하나 지지 않으려고 서로 물고 물리는 저의를 모르는 바 아니다.
본격적인 입법과정에서의 유리한 입지선점 의도임을 안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에서 총무들이 설령 도토리 키재기로 투닥거린다
하더라도 당 최고 지도부가 지도부다우면 모양새는 훨씬 달라진다.
문제는 이 장기 정쟁이 명분을 앞세운 실리의 대립이라는데 있다.
선거의 부정조사나 제도개선, 검.경 중립성제고 등 그 모두가 그렇게
하고 안하고에다 서로 다른 명분을 세우지만 진짜 속내 이유는 그로
말미암아 이해가 어긋나기 때문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휩쓸려 간과하기 쉬운 점을 우리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모든 현안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이해관계의 주체가 실제로
누구인가를 바로 구명해야 한다.
이념정당 아닌 현 여-야 각당이 추구할 이익은 마땅히 당원 내지 지지
국민의 이익이어야 한다.
좀더 솔직해 보자.
과연 15대 국회벽두의 진통이 말그대로 신한국당 국민회의 자민련이란
정당 자체와 지지 국민의 이해 때문인가.
아니면 언제나 처럼 어느 소수 특정인들의 끝 모르는 욕망과 그것을
받들어야 지위를 유지 강화하는 붕당의 이해 때문인가를 우리는 바로 보고
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개원협상의 그 많은 우여곡절을 들여다볼 때도 근본에 있어 그 바탕은
수십년 일관한 예의 속성임을 알게 된다.
중핵은 3김의 대권욕이요, 나아가 그것에 도구적으로 봉사토록 위치 매겨진
지역대립이 배경으로 존재한다.
여기 부수적인 현상이 있다면 차기,차 차기를 겨냥하는 제2 제3 야망가들의
분파작용 촉진 개연성이다.
물론 철저히 게임의 룰을 존중하는 공개경쟁 전통 아래 야망을 가진 자는
그것을 불태울수 있어야 민주사회다.
그것의 무한정 지연 역시 종국적으론 3김 탓이다.
원구성의 추한 감투싸움이 국민을 더 이상 실망시키면 낭패다.
늦었지만 산적한 국사를 효율적으로 처리,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보여주는
일은 급하다.
그 첫발이 잘 나가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