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로 업체의 핫코일 생산, 강관 전문기업의 판재류 진출, 봉강공장의
탈철근화"

최근 국내 철강업계에 거세게 불어 닥친 "영역파괴"의 사례들이다.

구조조정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동안은 특화된 제품에 따라 철강업계의 영역구분이 명확했다.

<>1고로(포철) <>5대 전기로(인천제철 동국제강 강원산업 한보철강
한국철강) <>3대 냉연(포철 동부제강 연합철강) <>5대 강관(세아제강
현대강관 한국강관 동부 연철)등으로...

그러나 이런 구조가 이젠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급격한 구조조정에 불이 붙은 것이다.

철강업계에도 무한 경쟁의 신호탄이 발사됐다는 의미다.

뒤집어 보면 21세기 한국 철강이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몸부림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실제로 한보철강은 전기로에서 나온 쇳물로 박슬래브 방식을 통해 핫코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핫코일 시장에서 포철의 독점은 끝난 것이다.

강관업체인 현대강관은 냉연강판 생산에 참여키로 했다.

반면 냉연전문업체인 동부제강은 강관생산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세아제강도 컬러강판과 냉연강판 생산을 계획중이다.

철강업계에 묵계처럼 내려온 "영토 분할"은 완전 무시다.

이로 인해 그동안의 제한경쟁이 실질경쟁으로 바뀌었다.

이뿐 아니다.

기존 영역안에서의 구조조정도 눈부시다.

제품의 고부가가치화가 그것이다.

주로 전기로 업체들이 적극적이다.

강원산업은 부가가치가 낮아 원자재값도 감당키 어려운 철근 라인을 줄이고
있다.

대신 라운드바나 선재 등으로 생산품목을 돌렸다.

또 대부분의 철근 메이커들이 고장력 철근 등의 생산비중을 높이는 경향도
마찬가지다.

업체들의 영역파괴를 양적확장으로 본다면 이는 질적 고도화다.

구조고도화의 방향이 종횡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각사의 신공법 도입 추세도 구조조정 과정의 한 특징이다.

용융환원설비(코렉스) 박슬래브캐스터(미니밀)등 혁신설비의 도입이
그렇다.

차세대 기술로 통하는 이들 공법을 앞다퉈 보유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선점한다는 전략이 배경에 깔려 있다.

환경규제 원료부족 등도 신공법의 도입을 부추기는 요인중 하나인건
물론이다.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철강업체들의 해외진출도 같은 맥락이다.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 시장 선점, 경쟁력 상실 분야의 생산기지 이전
등이 모두 해외투자의 요인이어서다.

철강업체들이 너도나도 구조고도화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존의 생산체제.품목.방식 등으로는 더이상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모두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지금 타이밍을 놓치면
영원히 뒤떨어진다는 위기감도 그들을 채찍질하고 있다.

게다가 철강 후발국가들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특히 중국이 그렇다.

이 나라는 지금 철강재 수입국이다.

하지만 낮은 임금과 엄청난 노동력을 감안하면 그 잠재력을 무시할 수
없다.

조만간 강관이나 철근 등 단순기술 분야에선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게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철근 등은 터키산 등 외국제품에 내수시장을 잡아 먹히고
있는 실정이다.

적지 않은 운송비를 포함한 수입품에 비해 국산은 이미 가격에서 밀리고
있다.

선진국들에 대한 가격경쟁력 우위도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

가격 격차가 워낙 빠른 속도로 좁혀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역전될지 모를 판이다.

세계적인 철강전문연구기관인 미국의 WSD분석을 보자.

지난 87년 한국의 냉연강판 제조원가는 t당 360달러선.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19~24% 정도 쌌다.

그러나 지난 94년엔 t당 375달러에 달해 6년간 4.2%나 비싸졌다.

선진국 철강업체들이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원가를 낮춰온 것과는 대조적
이다.

영국은 이미 t당 394달러로 한국의 105% 수준까지 바짝 쫓아 왔다.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구조를 고도화하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경쟁력을
지키기는 커녕 채산성조차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얘기다.

업계의 구조고도화는 대세이며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 73년 포항제철소에서 철강생산을 시작한지 4반세기도 안돼 세계
6위의 철강 대국으로 떠오른 한국...

앞으로도 급부상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아니면 성장의 한계에 부닥쳐 추락
할지 여부는 업계의 구조조정 성패에 달린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