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6월4일 화요일 오전9시.

서울시 광화문에 있는 세안빌딩 19층의 정보통신부 회의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신규통신사업의 막바지 관문인 청문심사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이석채정보통신부장관이 청문위원석 한가운데 앉아 청문회 주재를 준비하고
있다.

좌우에 3명씩의 청문위원들이 자리잡고 앉아 있다.

맞은편에는 첫 청문대상인 개인휴대통신(PCS)사업을 신청한 에버넷 남궁석
대표(삼성데이타시스템 사장)와 LG텔레콤 정장호대표(LG정보통신사장)가
보조자 1명씩을 대동하고 "면접받는 수험생"마냥 다소곳이 앉아 있다.

출입문쪽에는 정보통신부 공무원등 진행보조요원들이 배석하고 그뒤로
청문회내용을 기록하기 위한 VTR녹화장비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장관의 첫마디가 이 긴장감을 깨뜨렸다.

"청문위원들은 진실로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사업자를
고르는데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에버넷과 LG텔레콤의 관계자들도
성심성의껏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장관이 당부에 뒤이어 꺼낸 첫 질문은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면서도
좀 의외였다.

"왜 PCS사업을 해야 합니까"

에버넷의 남궁석대표가 먼저 답을 했다.

답변순서는 신청법인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정했다.

"통신산업은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국가 인프라입니다. 개방된 국내시장
에서 외국의 거대기업과 경쟁해 이기기 위해서는 기술력 자금력 글로벌경영
능력 도전하는 기업문화등 4박자를 갖춘 기업이 필요합니다. 에버넷이 바로
이런 기업입니다"

정장호LG텔레콤 대표의 대답도 거침 없었다.

"지난 50년대부터 국내 통신산업을 선도해온 LG그룹이 PCS사업에 참여해
부품의 국산화를 촉진시키고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사명이자 의무입니다.
PCS사업은 축적된 기술과 장비개발경험을 바탕으로 막대한 연구개발투자와
사업수행의지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LG그룹은 PCS사업에 성공할수
있는 기술 재정 경영능력과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미리 점쳐본 청문심사 모습이다.

신규통신사업 진출을 추진중인 기업들이 거쳐야할 마지막 관문인 청문심사
가 내주중반께 시작된다.

채 1주일도 남지 않았다.

참여추진기업들은 온통 청문심사방법과 질문내용등을 탐문하느라 정신이
없다.

문제를 미리 알면 그만큼 좋은 답을 써내 좋은 점수를 얻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청문에 대해 명확히 발표된 것은 없다.

다만 정통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미리 그려볼 따름이다.

우선 청문심사를 실시할 사업으로는 PCS와 TRS(주파수공용통신)전국사업이
확정적이다.

참여신청기업 가운데 대기업이 들어있는 무선데이터통신이나 6대1의 치열한
경합이 벌어진 수도권 무선호출도 일단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손꼽힌다.

그러나 국제전화와 같은 무경합사업이나 TRS와 CT-2(발신전용휴대전화)분야
의 지역사업자등은 청문회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수도권TRS와 CT-2사업도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청문위원은 7~8명정도가 선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석채정보통신부장관이 위원장을 맡아 진행하되 본인은 채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나머지 위원은 기술과 경영분야로 나눠 선정하고 사업계획서 심사에
참여했던 전문가 1명이상이 청문위원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방법으로는 경합하는 사업자를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진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홍식정보통신정책실장은 "경쟁기업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할지 따로따로
할지 확정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 "같이 하는 것이 청문회의 취지에
맞는것 같다"고 말해 이런 예측을 뒷받침했다.

청문항목은 이미 정해 놓았다.

크게 중소기업지원계획등 5~6가지 정도로 알려져 있다.

연구개발계획이나 도덕성등에도 질문이 집중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청문회 준비팀의 걱정은 질문의 깊이와 방향을 점칠수 없다는데
있다.

"과거 민방선정때 청문을 보면 현장에서 질문이 튀더라"(A그룹 이모이사)는
것이다.

갑작스런 질문이 많고 갈수록 깊이가 더해가고 답변곤란한 질문이 상당수
생긴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청문심사는 신규사업을 향해 달려온 많은 기업들에는 마지막
관문으로 "굳히기"나 "막판뒤집기"의 기회가 되는 한편 많은 후일담도 함께
남기게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