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만 열면 정보화시대를 떠드는 판에 실로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8일 증권거래소의 주식매매체결 시스템에서 전산장애가 발생해
이날 오전내내 주식현물및 선물거래가 일체 중단된 것이다.

그동안 증권사와 거래소를 연결해주는 공동온라인망에 장애가 생겨 개장이
잠시 늦어진 것은 있었으나 매매체결시스템의 장애로 오전장 전체가 열리지
못한 것은 지난 56년 증권거래소가 문을 연뒤 처음 있는 사고였다.

이 때문에 증권사와 투자자들이 엄청난 불편과 금전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이고 국내증시 운용체제에 불신감을 더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먼저 증권전산및 거래소관계자들의 무능과 무사안일한 자세를
탓하지 않을수 없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작동돼야 할 백업기능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채
어떻게 자본시장개방에 대응해 가겠다는 말인가.

게다가 이날 장이 마감될 때까지 정확한 사고발생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이렇다할 해명조차 없었으니 한심한 일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해 몇차례의 전산장애가 일어났을때 사고예방을 위한
철저한 대비책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예방은 커녕 사후수습도 엉망진창인
실정이다.

정보화는 대용량의 전산시스템을 도입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치밀한 시스템운용및 사후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교대근무자들간에 업무인수인계가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심지어 자료가 입력된 테이프분류마저 제대로 돼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훨씬 더 심각한 대형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는가.

또한가지 걱정스러운 일은 이번 사고와 비슷한 일이 다른 부문에서도
재발될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밀접히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전산네트워크로 뒷받침되고 있다.

우리정부가 행정, 금융, 교육 등에 관한 국가기간 전산망의 완성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 한예다.

그러나 우리는 전산시스템의 제작및 설치같은 하드웨어 기술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운용및 관리라는 소프트웨어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게다가 개별 전산시스템들이 서로 연결돼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을때 고의 또는 실수로 전산장애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훨씬 커질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사고는 국내금융산업의 취약한 하부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책당국은 오는 21세기에 금융산업을 전략산업화한다는 장기구상을 갖고
있지만 통합금융 전산망의 마비, 시스템 운용능력의 부족, 정보마인드
상실과 같은 한심한 현실에서 이는 한낱 장미빛 꿈일 뿐이다.

증시를 포함한 금융권전체 더나아가 국민경제전체의 시스템운용효율을
높이고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경영진이나 고위공무원부터 정보화시대에 결맞는
의식을 갖춰야 하며 직원들의 근무기강확립을 위해 힘써야 겠다.

정보화시대에 무사안일과 부주의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