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동남아 이민이 문헌사료에 최초로 등장한것은 북송(960~1127년)
말에 씌어진 주역의 "평주가담"에서다.
이민지역이 동남아시아를 벗어나 미국 호주등으로 확산된 것은 아편전쟁
(1840~1842년)이후의 일. 중국인의 대규모 해외이주가 이루어진 시기는
대체로 국내 여건이 극도로 악화됐던 시기와 일치한다.
즉 청조말기에 정치적 불안이 현저한 가운데 1846년 1849년과 1877년
전후에 발생한 대기근(200만명 사망)은 해외이주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됐다.
1840년과 1870년에 발생한 폭동으로 6,000만명이 사망하고 홍콩을 영국에
조차하는 남경조약체결(1842년)등은 중국당국이 인민들의 출입국을 관리할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에 중국을 떠난 화교들의 대부분은 남동부 연해지역, 그중에서도
광동 복건 해남성지역 출신이 다수를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동남아지역으로의 이주는 연쇄적으로 이뤄졌다.
한마을에 살던 친척이나 이웃들이 먼저 이주한 사람을 따라 특정지역으로
이주한다.
이러한 지역적 연결성은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