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비서실 산하기구인 국가경쟁력 강화기획단이 "경제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나섰다.

실제로 어느정도 성과가 있을지는 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의욕과
문제의식만은 높이 살만하다고 본다.

관청과 관련된 일은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는 인식이
우리사회에는 매우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청사람들과는 잘 알아야 하고 친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돼 있고, 사업을 하려면 관청로비를 잘해야 한다는게 불문율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허가사항이든 신고사항이든 가릴 것없이
받아들이기도 하고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는등 행정의 자의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획단이 밝힌것 처럼 기술도입계약은 신고제로 돼있어 요건만 갖추면
수리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삼성자동차의 기술도입계약 수리여부가 한동안
큰 이슈가 됐었던 전례에서 보듯 구비서류를 갖춰 낸다고 다 수리되는게
결코 아니다.

"국민경제발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경우 신고를 수리하지 않을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신고제는 따지고 보면 허가제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허가제중에서도 최악의 허가제라고 할수 있다.

"국민경제상 필요"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등으로 수리를 거부할수
있는 기준을 지극히 추상적으로 애매모호하게 표현, 결과적으로 해주고
싶으면 해주고 말고 싶으면 말게 돼있으니까.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입만 열면 되풀이해 온 "규제완화"가 일부
국민들에게는 공념불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전
측면에서 이유가 있다.

제도상 인.허가와 신고제가 다르고 네거티브 시스템과 포지티브 시스템이
차이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나 저것이나 그게그것으로 받아들여지는게
보통이고 보면 규제완화를 위한 제도개편의 효과는 반감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법령상의 애매모호한 표현이나 행정편의적 내용을 없애
될 것과 안될 것을 명확히 하겠다는 국가경쟁력강화 기획단의 발표에
큰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행정편의적인 부령등을 상위법령에 명시토록하거나 폐지하는 등으로
정비하겠다는 것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래본들 뭐가 달라질까.

벌써부터 의구심이 없지 않은 것도 솔직한 느낌이다.

해외투자에 대해 자기자금 의무조달비율을 설정하거나, 제철이나 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신규참여를 규제하는 "경제행정"이 무슨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 규정도 없는 이른바 "행정지도"가 마구 통용되는 현실에서
"애매모호한 규정"의 정비가 어느 정도 실질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경제행정이 진정한 의미에서 투명성을 가지려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각종제도의 정비와 함께 공무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규제"를 할수 있는 권한이 없어지면 존재의의가 없다는 식의 관.민시대의
낡은 관념이 민.관시대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이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걸었던 "작은 정부"가 말에만 그칠것 같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행정의 투명성확보를 위해서는 정말 거듭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