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호 < 서강대 교수/경영학 >

대통령의 신노사구상 5대원칙은 심화되는 세계 경쟁속에서 우리 경제가
노사화합으로 다시 한번 도약해야 하는 이때 중요하고도 시의적절한 것이다.

5대 원칙의 기본 과제는 노사관계를 불신에서 신뢰로, 대립에서 협력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산업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급격한 환경변화의 시기에 와있다.

산업화시대는 대립과 불신의 시대였다.

만들면 팔리는 시대였기에 원가절감이 가장 중요했고 공장은 근로자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힘들게 일하는 곳이었다.

근로자들이 자부심을 갖기란 어려웠고 그래서 대립과 불신이 지배하게
됐다.

정보화시대는 경쟁이 심화돼 좀더 나은 물건을 만들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혁신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그냥 시키는 대로 만드는 데서 벗어나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지시한대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통제의 패러다임에서, 생각하면서
더 나은 물건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율의 패러다임으로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대립과 불신의 시대에서 협력과 신뢰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인간화는 세계화와 더불어 정보화시대 경영의 특징이다.

보다 인간적 경영이 요구되는 것이다.

인간적 경영은 "우리는 왜 사는가" "경영은 왜 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이고,
경영을 하는 목적은 사람의 잠재력 개발을 통해서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이다.

인간적 경영은 개인의 목적과 회사의 목적이 일치할때 가능한 것이다.

인간적 경영의 개념을 이익-고객-품질-기술-현장-사람으로 이어지는
전략의 고리라는 개념적 모형으로 나타낼수 있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고 이익으로써 생존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우리 제품을 사주는 고객이 있어야 하고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품질이 좋아야 한다.

품질이 좋기 위해서는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기술은 현장에서 사람이
개발하는 것이다.

사람의 개발이 경영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신뢰의 기본은 자부심 긍지, 나아가서는 존엄성을 심어주는 것이다.

나는 존엄성을 위한 경영을 제안하고 싶다.

인간은 존엄성이 있어야 잠재력이 개발되고 잠재력이 개발될 때 존엄성이
나온다.

존엄성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율과 평등이다.

잠재력은 일을 통해서 개발되고 일은 혼자할 수 없고 남과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열정과 관계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율과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한 기회가 제한 없이 주어지는 평등이 요구되는 것이다.

자율은 관료적 병폐를 제거하는 것이다.

미국의 어느 최고 경영자는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을 하는 것은
근로자들에게 달려 있고 행동을 옮기기 전에 윗사람의 결재를 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종업원에게 주지시킴으로써 분위기를 바꾸어 나갔다.

자율은 물론 평가를 전제로 한다.

평가는 개인 평가보다 팀 또는 회사 전체의 성과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책임 정신을 고취시킨다.

자율에는 또한 정보 공유가 요구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서는 이익 등에 관한 정보를 차단하고 경영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하지는 않고 계속 쥐어 짜기만 한다는 극단적인 불평이
나오고 있다.

진정한 자율은 고객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미국의 어느 회사는 근로자들이 정기적으로 고객 회사를 방문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돌아오자마자 자기 업무에 대한 자세를 달리하였고 고객의 요구사항
에 대해 더 깊은 배려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객회사와 공급업자의 협력을 얻어 신제품 개발 주기를 50%이상
감축했다.

그들은 또한 고객 회사에 가서 경쟁 업체가 하는 일을 자기들에게 달라고
말하며 주문을 받아 오기까지 했다.

평등은 기회를 제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등은 소외와 대립이 아니고 참여와 협력의 정신을 요구한다.

미국의 어느 회사는 근로자들에게 50억원 규모의 사업 계획서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참여를 조장하였다.

참여의식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중요하다.

미국의 한 철도운송 회사 사장은 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자들과의
만남부터 시작하였는데 1만명 종업원을 100여 차례에 걸쳐 만나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을 이해하고 일관성있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하게
되었다.

협력은 구성원 상호간 상하간에 개방적이고 민주적 관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경영은 상대적으로 보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협력을 위해서는 기능적 사고를 타파하여야 한다.

이것은 기능적 조직에서 팀조직으로 변화를 요구하지만 이에 앞서 모든
기능 부분에 우리 부서는 누구를 위한 부서인가 하는 고객지향적 사업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일에 열정을 가지고 남과 협력해서 일하면서 잠재력을 개발할때
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주인의식은 소유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열정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자율과 평등에 기초를 두고 일을 하면서 일의 주인이 된다면
모두가 근로자이면서 경영자이다.

이럴때 근로자도 없고 경영자도 없는 경영이 가능한 것이다.

노사 관계라는 용어는 산업화 시대의 용어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총과 경총은 없어져야 하든지 아니면 그 사명을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노총과 경총은 서로 대립하면서 임금 인상률을 결정하는 단체교섭형
에서 어떻게 하면 근로자의 잠재력을 개발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인력 개발형으로 탈바꿈해 나가야
할 것이다.

노사문제는 파이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것이고 임금 인상이
아니라 잠재력 개발이고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의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