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영화는 세상을 보는 "2개의 창"으로 불린다.

책과 영화 모두 동시대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하기 때문.

문학평론가와 시인이 쓴 영화이야기는 그래서 세상 엿보기의 또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최근 출간된 문학평론가 여석기씨 (고려대 명예교수)의 "씨네마니아-
영화와 함께 하는 시간여행" (솔간)과 김화영씨 (고려대 불문과 교수)의
"어두운 방안에서 내다본 밝은 세상" (현대문학간), 시인 하재봉씨의
"하재봉의 영화읽기" (예문간)가 그것.

영문학자로 문예진흥원장을 지낸 여석기씨의 "씨네마니아"는 30년대부터
95년까지의 영화를 10년단위로 나누어 보여준다.

영화사 100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의 뒷얘기와 당시의 시대상,
제작과정에 얽힌 에피소드등이 담겨 있다.

여씨는 조셉 폰 스턴버그감독의 "모로코" (30년작)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 작열하는 사막에서 여주인공이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걸어가는 광경과 "망향"의 마지막 뱃고동소리 등을 통해 지난 시절의
감동과 세월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전한다.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를 보는 그의 눈은 이채롭다.

"허풍선이" 얘기를 담은 이 영화에서 그는 또다른 진지함을 발견한다.

검프가 자기를 괴롭히는 부조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는
일"과 어머니 혹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귀향"의 이미지가 그것.

이 영화가 어설픈 교훈이나 성공담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유도 바로
이같은 "살속의 뼈대"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화영씨의 "어두운 방에서 내다본 밝은 세상"은 영화속의 삶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김씨는 크리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세가지 색, 블루"를 통해
"침묵에서 음악으로 가는 푸른 여정"을 얘기하기도 하고 트란 안홍
감독의 "그린 파파야 향기"에서 "투명한 채색화로 그린 신데렐라"를
만나기도 한다.

이책에는 그가 40년전 장터거리의 노천극장에서 보았던 "봇짐지고
타박타박 피난온 소년"의 모습과 지난해 개봉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얘기까지 17편의 영화에세이가 스크린처럼 펼쳐져 있다.

나흘간의 사랑을 다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대해 그는 "저무는
하늘의 노을을 배경으로 가만히 멈춰 있는 시골풍차, 그 실루엣.

이제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읊조리다 곧이어 "어디에도 없는 것,
바로 그것이 왜 사람들의 가슴을 흔드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하재봉의 영화읽기"에는 60여편의 영화얘기가 "성과 욕망" "사랑"
"존재와 사회" "컬트의 세계" "영화와 음악" 등 5개 분야로 나뉘어 있다.

말미에는 "킬러영화의 사회적 의의와 배경" "호러무비" "문학과 영화"
등 비평적 단상들도 실렸다.

동성애 시인 랭보와 베를렌느의 삶을 다룬 "토탈 이클립스"나 성의
신비와 존재의 전이를 탐색한 "올란도"편에는 욕망의 양면성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특유의 문체로 반영돼 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