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서 접하기 힘든 스페인 러시아 등 유럽 비디오가 잇따라
출시된다.

미국 홍콩 등에 집중돼 있던 비디오 수입선이 이처럼 다변화되고 있는
것은 비디오 대여시장이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면서 보급사들이
대작보다 값이 싸면서도 색다른 영상미를 지닌 제3지역 영화를 찾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영상사업단이 "패션 투르카"를 드림박스 브랜드로 출시하고
대우계열의 우일영상과 시네마트가 "노스탤지아"와 "마이 러브 카티샤"를
각각 내놓는다.

이들 영화는 미국은 물론 기존의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화와 상당히
다른 감각을 보여준다.

강렬한 색감과 스페인 특유의 정열이 넘치는 "패션 투르카"는
"아만테스"를 감독한 비센테 아란다의 최신 문제작.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찾는 관광지 터키를 배경으로 안정된 현실을
박차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나서는 현대여성의 성심리를 진한
에로티시즘에 담고 있다.

국내 개봉 당시 충격적인 러브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은 터키를
저급한 본능과 쾌락의 상징으로 묘사해 스페인과 터키간에 외교마찰을
빚는 등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희생"과 함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노스텔지아"는 83년 칸영화제 그랑프리, 최우수 감독상, 국제영화비평가
협회상 등 3개부문 수상작.

"러시아의 위대한 영상시인"으로 추앙받는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망명후
처음 만든 이 작품은 감독 자신이 떠나온 러시아의 시골집과 자연,
가족에 대한 향수를 가치상실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영혼의
안식처로 묘사한다.

기억과 환상이 교차하는 흑백영상, 물과 불을 모티브로 유배와 향수의
정서를 표현한 시적 영상등이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희생"의 어랜드 조세프슨과 올렉 얀코브스키가 출연한다.

94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출품작인 "마이 러브 카티샤"는 인간의
잠재의식속에 감춰진 성적 본능과 범죄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

시어머니의 원고를 타이핑하는 카티샤는 여름 휴양지의 별장을 찾는다.

남편에 대한 애정을 잃은 그녀가 별장지기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시어머니는 충격으로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은밀한 장면처리와 미묘한 카메라워크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러시아의
신예 발레리 토도르브스키 감독의 독특한 영상세계와 러시아 문화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인터걸"의 잉게보그 다프카이나체와 비아티밀 마체코프 주연.

< 정한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