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의 문헌인 "계림류사"에는 "취왈속"이라는 대목이 있다.

언어학자들은 이것이 "취하다"의 고유어가 "속다"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사람이 술을 마시면 이성적 측면보다 감성영역이 확대돼 미혹이나
혼돈상태에 빠지게 되는데서 "취하는 것"은 "속은 것"같다는 논리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흔히 술은 미혹 혼돈 일체화화합을 상징하고 제물로 쓰이며
건강 장수를 빌거나 인정과 즐거움을 나누고 홍과 멋을 돋우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예기"에 보면 술은 기쁨을 함께 하는 것, 노인을 봉양하는 것, 병을
낫게하는 것등으로 미화돼 있다.

그러나 술은 마시는 사람의 성품에 따라 길흉화복이 갈라진다는 경고성
단서조항을 달아 놓았다.

그속에는 "백약지장"인 술이지만 "광약"이 돼 때에 따라서는 "망신주"
"망국주"가 될수도 있다는 무서운 경고가 포함돼 있다.

조선이 건국되자 제일먼저 등장한 것이 금주령이었다.

1395년 이성계에게 올린 금주령을 내리기를 청한 헌사의 상소세서는
"술은 제사의 덕으로 마시는 것이니 취해서는않는다"는 술의 의미를
축소시키려 한지도층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태조이후 역대왕마다 가뭄이나 홍수로 흉년이 들때마다
금주령을 내렸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은 별로 없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술로인한 대신들의 실언이나 망동, 백성들의
범죄가 적지않게 기록돼 있다.

오랜 유교의 영향아래 이루어진 한국의 "주도"는 몇가지 유별남을
지닌다.

"찬물에도 위 아래가 있다"해 장유유서는 반드시 지킨것은 미풍이라
할만하지만 "술은 권하는 맛에 마신다"는 술꾼 특유의 정이 문제다.

술상에 앉으면 대작하여 술을 서로 주고 받는 "수작"을 하고 잔에
술을 부어 돌리는 "행배"의 주례가 있다.

이때 권주잔은 반드시 비우고 되돌려주는 "반배"를 한다.

반배는 가급적 빨리 해야하며 "주불쌍배"예절이다.

이 주도를 지키다보면 의례 과음은 면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가 "담배와의 전쟁"에 이어 "음주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음주문화개선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고 한다.

과음의 건강상 해독을 경고하고 심지어 죽기까지하는 고약한 폭음사고도
막아보겠다는 뜻에서 나온 방안인듯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애주가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장진주"로 유명한 시인술꾼 정철은 한때 단주를 결심했으나 결국
결코 술과 절연할 수 없다는 내용의 "주문답삼수"를 짓고 포기하고
말았다.

"락주종생"하려면 술의 절제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듯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