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컴퓨터도둑이 극성을 부리면서 사용자는 물론 관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컴퓨터 본체를 분해,부가가치가 높은 칩만을 훔쳐가는 교묘한 도난이
급증해 업계가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유럽 유력주간지인 "더 유러피언"은 금주호에서 지난 한햇동안 회원국
내에서 도난당한 컴퓨터및 내장칩이 90억달러 상당에 이르렀다고 유럽연합
(EU)의 통계를 인용, 보도했다.

이신문은 지난해 칩이 분해.도난된 컴퓨터가 런던에서만 1만대를 넘었으며
미국 인텔사의 경우 93년 한햇동안 유럽에 수출된 컴퓨터칩중 8백30억달러
상당이 분실됐다고 전하고 "그러나 컴퓨터 도난으로 인해 발생하는 업무중단
자료분실 시스템교체등을 감안하면 도난 피해액은 사실상 이의 몇곱이 된다"
고 주장했다.

이신문은 나아가 "이제 블랙마켓에서는 마이크로칩이 마약 보석류등을
대체할 수 있는 유동성이 확실한 새화폐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보험업계 전문가인 마이클 제이씨도 "무게로 따지면 컴퓨터칩이
히로뽕보다 4배 이상 값어치가 나간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007가방"에 특수용칩을 담으면 1백만달러를 호가하니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컴퓨터도난의 심각성에도 불구, 문제는 이를 방지할 묘안이 없다는
점이다.

자동차와는 달리 컴퓨터칩에는 생산일련 번호등이 없어 현행범을 제외하고
는 범행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유럽 수사기관들은 따라서 "도난된 칩들의 대부분이 암거래시장을 통해
동구나 남부유럽으로 흘러간다"고 추정할뿐 구체적인 관련 자료조차 작성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약 단속과는 달리 국가수사기관간 공조체제도 없다.

이에대응, 최근 IBM 영국 현지법인이 자사칩에 생산 일련번호를 기입키로
결정했으며 컴퓨터에 내장된 칩을 분해하면 그기능을 상실하는 장치를 마련
하는 기업도 늘고 있으나 유럽전역에 유행처럼 번지는 컴퓨터도난을 방지
하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 브뤼셀=김영규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