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지난달말에서 오는 6월말로 발표가 연기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포철 경영진단 보고서"가 공중에 떠버릴 위기에 처했다.

내용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5개월간의 보완기간이 주어졌지만 정작
보고서 집필자인 KDI의 유승민박사는 "손을 볼수"없게 돼서다.

유박사는 1년간 미국의 모대학에서 교환교수를 하기 위해 내달 17일
출국할 예정인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지난 94년초 시작된 포철경영진단엔 KDI외에 삼일회계법인 등
다수의 연구자들이 직간접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유박사는 최종 집필을 맡았고 특히 보고서의 핵심인 "민영화 및
경쟁체제 주장" 부문을 담당했다.

포철보고서는 유박사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박사가 빠지게 되자 KDI는 마땅한 "대리인"을 찾지
못해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KDI는 연구자를 바꿀 경우 보고서 "변질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그렇다고 그냥 덮어둘 수 만도 없는 처지여서 곤혹스런 입장이다.

통상산업부 관계자는 "포철의 경영진단보고서는 유박사 개인이 아닌
KDI에 발주한 만큼 연구자의 개인 신상변화엔 관심이 없다"며 "KDI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무책임한 태도다.

이와관련, 업계에선 "KDI보고서가 통산부 입장과 정반대로 포철의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등을 주장하자 통산부가 앞뒤 재지 않고 보고서
발표를 연기한 결과"라며 "내용 보완이란 연기사유가 괜한 핑계였음을
반증한 것"이라는 반응들이다.

사실 통산부는 "KDI 요청으로 보완시간을 줬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실제론 KDI에 "연기 압력"을 가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편 유박사는 "보고서의 전반적인 내용을 바꿀 생각도 시간도 없다"며
"문제지적이 많았던 일부 부분에 대해서만 남은 시간이나마 보충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