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해 오고 있다.
독도의 옛 이름은 우산도이지만 자산도라고도 했다는 것은 모도인 울릉도의
자도라는 뜻도 함축해 있다.
조선조 "세종실록"에는 이미 삼국시대에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산국을
형성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특히 1425년(세종7년)울릉도 주민을 본토로 데려오기 위해 파견했던
김린우의 직함이 "우산(독도) 무릉(울릉도) 등 처안무사"라고 했다는
기록을 보면 울릉도와 독도가 예부터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모자도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고려조의 정책은 본토인을 이주시키고 관리를
파견하는 등 오히려 적극적이었지만 조선조초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공도정책을 썼던 것이 화근이돼 1696년에는 한 때 울릉도가 일본땅이라는
일본측의 억지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조선조정의 강한항의를 받은 일본 막부는 바로 고해에 울릉도가
울릉도가 조선영토임을 인정하고 일본어민들의 도해금지령을 내렸다.
이때까지 일본인들은 울릉도를 "죽도"라고 불렀다.
그 이듬해인 1697년부터 조정에서는 울릉도를 3년에 한번씩 순찰하는
수토제도를 실시해 영토를 지켰다.
울릉도와 독도가 울릉군으로 개편된 것은 그로부터 200여년이나 지난
1900년에 와서였다.
일본은 그뒤 국운을 건 러시아함대와의 일본해전을 앞두고 1905년2월
독도를 죽도로 명명한후 시네마현고시 제40호로 독도만 자기네 영토로
편입시켰다.
1년이 지난 1906년4월에야 이 사실을 알게된 조정이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임을 천명했으나 이미 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간 뒤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한국은 삼국시대이래 한번도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한 사실이 없고
일본의 영토편입 조처를 묵인한 사실도 없다.
경북 울릉군 남면 도동1번지인 독도는 우리땅이다.
일본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설정계획에 따라 독도영유권문제가 다시
한일간의 마찰을 불러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총리대신이 바뀔때마다,총선이 있을때마다 버릇처럼 고개를 드는 것이
독도문제다.
하시모토내각의 신보수세력이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요즘이니 어느때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
일본의 중고교 지리부도에는 이미 독도가 일본땅으로 되어 있다는 소식도
심상치 않다.
일본의 억지논리를 반박할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의연하고 적극적인 대응방안마련이 시급한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