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노 <영풍문고 사장>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으로 꽉 차있는 바람에 앞뒤가 막혀 늘
허둥대던 나를 보며 어머니께서 "얘,되어가는대로 해라"며 위로해주시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아름다운 젊음의 고통이었을게다.

그때 나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었다.

허공을 달리던 내 마음은 고요로 돌아가 스스로를 돌아볼수 있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어떻게 할 것인가"의 번뇌속에 내가 갖춰야 할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의 화가 폴 고갱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지만
살펴보면 그의 전기는 아니다.

제목에서 보는바와 같이 달은 세속의 물욕을 떠난 이상향으로서
인간이 다가가면 갈수록 점점 멀어져만 간다.

생명이 다하도록 그저 바라다 보는 대상일 뿐이다.

반대로 영국의 최소 화폐단위인 펜스는 물질적 삶의 가치기준이다.

주인공 스트리 크랜드는 세속적 욕망이라는 것이 고작해야 6펜스밖에
안된다며 모든것을 헌신짝 벗어던지듯 버리고 순수한 정신세계로 돌아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목표임을 가르쳐 준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삶의 큰 장벽을 실감했다.

주인공처럼 달을 쫓아가고픈 이상과 6펜스로는 살 수 없는 현실이
나를 온통 뒤흔들었다.

달을 쫓는 삶과 6펜스에 매달리는 삶중 그 어느것도 닮을수도,닮으려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젊은 나의 마음은 정신세계에 이끌려 그속에서 "풍요로운
물질생활을 어떻게 순치할 것인가"에 골몰할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과유불급이라는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할수 있도록
했으며, 또한 인생의 경구요 지침으로 삼도록 해주었다.

그 덕에 나는 마음과 물질에 부족함 없이 살게 됐다고 확신한다.

지금도 영풍문고를 찾는 어린 학생들이나 부모님들에게 기회 있을때마다
주저없이 이 책을 권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