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을 상정했다.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전자화폐의 이용실태를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BIS가 조사하자는 것이었다.
전자화폐가 국제금융기구 회의에서 정식의제로 오르기는 이때가 처음
이었다.
BIS가 전자화폐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전자화폐가 국제결제수단
으로 떠오르면서 금융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민간은행 창구를 거치지 않고 이뤄지는 자금거래가 증가할수록 금융당국이
자금실태를 파악해 적절한 금융정책을 내놓기가 어려워졌다고 본 것이다.
각국 금융당국은 전자화폐나 전자은행과 같은 최신 전자금융기법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금융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관계자들은 수년전부터 금융계에
확산되고 있는 자동이체(sweep program)로 인해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통화량 조절이 예전에 비해 어려워졌다고 실토한다.
경제활동 척도로서의 통화량 지표의 유용성도 현저히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의 토마스 멜저 행장은 통화량(M1)만 들여다보면
FRB가 현재 금융긴축정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 되지만 총통화(M2).총유동성
(M3)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현재로서는 M1의 유의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전자결제가 확산돼 통화량 지표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자금거래가
증가하면 지표의 효용성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에드워드 켈리 FRB이사는 "(계정의 자동이체가) 통화관리에 대단한 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금융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동이체만이 아니다.
수년전부터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현금자동인출기(ATM).크레디트카드.POS
(판매시점)결제 등도 전통적인 통화량 지표와 경제상황간의 상관관계를
약화시키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전자결제가 확산됨에 따라 무엇보다 통화의 유통속도가
빨라졌다고 지적한다.
또 장기적으로는 통화에 대한 개념과 금융정책이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캔사스시티 연방은행의 토마스 훼니히 행장은 금융당국이 우선 "전자결제
시스템의 정책적 함의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금융당국은 종래 금융기관에 한정돼 있던 자금결제창구가 소프트웨어.통신
회사와 같이 감시권 밖의 비금융업체로 옮겨질 가능성도 눈여겨 보고 있다.
금융소프트웨어 "퀵큰"으로 유명한 미국 소프트웨어업체 인튜이트는 최근
고객들이 인터넷을 통해 금융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때 인튜이트 인수를 추진했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도
은행들의 전산망을 인터넷과 연결하는 구상을 밝혔다.
이같은 구상이 현실화되면 금융당국이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전자금융이 확산되더라도 "현금없는 사회"가 완벽하게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드물다.
어느 사회에서나 지하경제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일부 계층은 지나치게
투명하다는 이유로 전자거래를 기피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술집 웨이트레스는 전자금융시대에도 팁은 현금으로 받으려
할 것이다.
전자화폐 "몬덱스"의 창시자인 팀 존스는 이같은 사실을 간파하고 "현금
없는 사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전자금융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현금을 사용할 필요성은 급속히
줄어들 것임은 물론이다.
은행 입장에서든 고객 입장에서든 전자거래는 기존 거래방식에 비해 거래
비용면에서나 시간면에서 월등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캔사스시티 연방은행의 훼니히 행장은 "앞으로 10년동안 세계는 "현금없는
사회"를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금융당국이 금융환경의 변화
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