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300) 제8부 아늑함 밤과 고요한 낮 (37)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가련이 계속 방안에 있다가는 불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일어나 방을 나가려고 하였다.
"어디로 가시려는 거예요?"
희봉이 가련을 막아섰다.
"저어, 잠깐 나갔다 올게"
"가만 있어봐요. 의논할 게 있어요"
희봉이 가련을 떠밀다시피 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가련은 희봉이 뭔가 눈치를 채고 따지려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긴장하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너를 무서워할 줄 알고? 다관의 아내 일로 나에게 따진다든지
분통을 터뜨린다든지 하면 나도 생각이 있다고.
너는 나를 항상 도둑놈 감시하듯 하는데 말이지.
너의 행실도 별 수 없잖아. 시동생이고, 조카고, 친척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남자들과 기회만 있으면 어울려 노는 거 내가 다 안다구.
그러면서 내가 여자들에게 말을 걸고 조금만 가까이 하려 해도 의심을
하고 강짜를 부린단 말이야.
나도 이제 네가 어떤 남자하고도 가까이 못하도록 감시하고 간섭할 거야.
두고 보라구"
도둑이 제발이 저리다고 독을 품은 독사처럼 상체를 곧추세우고는
가련이 희봉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세요?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뭐가 묻긴 뭐가 묻어? 도대체 의논하겠다는 일이 뭐야?"
가련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 이 달 스무하룻날이 보채 아가씨 생일이잖아요? 어떻게 생일잔치를
하는 게 좋겠어요?"
난 또 뭐라구. 가련은 바짝 치켜세우고 있었던 어깨를 천천히 늘어
뜨렸다.
잔뜩 긴장하여 마음속에 독설까지 품고 있었던 자신이 머쓱해졌다.
"생일잔치를 어떻게 하다니? 우리 집안에서 생일잔치를 한두 번 치러
보았어?"
별 문제도 되지 않는걸 가지고 그러느냐는 투였다.
"올해 보채 아가씨가 열 다섯 살이 되잖아요.
이번 생일에 비녀를 꽂아줘야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좀 더 특별한 생일잔치가 되도록 해야죠.
어른 생일로 하기도 그렇고 아이 생일로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의논을
드리는 거죠"
벌써부터 가련은 이런 문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귀찮아졌다.
"어쩐 일로 오늘은 나에게 의논을 하고 이럴까? 다른 때는 혼자
다 알아서 하더니만"
가련이 희봉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껴안는 척하며 슬며시 문지방을 넘어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4일자).
슬그머니 일어나 방을 나가려고 하였다.
"어디로 가시려는 거예요?"
희봉이 가련을 막아섰다.
"저어, 잠깐 나갔다 올게"
"가만 있어봐요. 의논할 게 있어요"
희봉이 가련을 떠밀다시피 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가련은 희봉이 뭔가 눈치를 채고 따지려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긴장하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너를 무서워할 줄 알고? 다관의 아내 일로 나에게 따진다든지
분통을 터뜨린다든지 하면 나도 생각이 있다고.
너는 나를 항상 도둑놈 감시하듯 하는데 말이지.
너의 행실도 별 수 없잖아. 시동생이고, 조카고, 친척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남자들과 기회만 있으면 어울려 노는 거 내가 다 안다구.
그러면서 내가 여자들에게 말을 걸고 조금만 가까이 하려 해도 의심을
하고 강짜를 부린단 말이야.
나도 이제 네가 어떤 남자하고도 가까이 못하도록 감시하고 간섭할 거야.
두고 보라구"
도둑이 제발이 저리다고 독을 품은 독사처럼 상체를 곧추세우고는
가련이 희봉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세요?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뭐가 묻긴 뭐가 묻어? 도대체 의논하겠다는 일이 뭐야?"
가련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 이 달 스무하룻날이 보채 아가씨 생일이잖아요? 어떻게 생일잔치를
하는 게 좋겠어요?"
난 또 뭐라구. 가련은 바짝 치켜세우고 있었던 어깨를 천천히 늘어
뜨렸다.
잔뜩 긴장하여 마음속에 독설까지 품고 있었던 자신이 머쓱해졌다.
"생일잔치를 어떻게 하다니? 우리 집안에서 생일잔치를 한두 번 치러
보았어?"
별 문제도 되지 않는걸 가지고 그러느냐는 투였다.
"올해 보채 아가씨가 열 다섯 살이 되잖아요.
이번 생일에 비녀를 꽂아줘야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좀 더 특별한 생일잔치가 되도록 해야죠.
어른 생일로 하기도 그렇고 아이 생일로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의논을
드리는 거죠"
벌써부터 가련은 이런 문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귀찮아졌다.
"어쩐 일로 오늘은 나에게 의논을 하고 이럴까? 다른 때는 혼자
다 알아서 하더니만"
가련이 희봉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껴안는 척하며 슬며시 문지방을 넘어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