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편식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액션물 바람이 올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는데다
포르노물의 범람도 위험수위에 다달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제작중이거나 기획단계에 있는 한국 영화는 30여편.

외형상 한국 영화 제작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내용은
전문 킬러를 내세운 폭력물과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에로물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해 "닥터봉"을 고비로 로맨틱 코미디물이 퇴조하면서
영화기획자들이 그 공백을 메울 부문으로 흥행이 보장되는 폭력.에로물을
택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주인공을 킬러로 내세운 영화는 "본투킬"과 "피아노맨" "투맨",
고난도 액션을 무기로 삼은 것은 "보스" "진짜사나이" "언픽스"
"카리스마"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계에서는 지난해 "레옹"과 "테러리스트" 등의 흥행성공이 이같은
바람을 부채질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형식도 "레옹"과 같은 투톱시스템이 주류를 이룬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은 "꽃잎"까지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을 정도.

아태필름의 고길수 홍보팀장은 ""장군의 아들"이후 "게임의 법칙"
"테러리스트" 등이 성공하면서 제작자와 감독들이 액션영화의 시대가
왔다고 판단한 것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제작되는 액션물은 지나치게 대중적 재미에만
치중, 깊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내용과 액션의 형태까지 외국 영화를
모방해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에로물 또한 예술적 성취도와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지독한 사랑"은 노골적인 섹스신을 홍보전략으로 삼고 있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도 끊임없는 베드신을 강조하고 있다.

얼마전 개봉된 "리허설"은 국내 최고의 정통섹스영화를 표방하고 나온
케이스.

에로.섹스물을 들고 나오는 쪽에서는 "새로운 재미를 찾는 관객들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흥행에도 안전한 영화를 만들고자 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상업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사회적 공감대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벌이에 급급한 한탕주의발상"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영화평론가 조희문씨 (상명대 교수)는 "영화자본의 왜곡된 구조와
흥행제일주의에 발목잡힌 충무로의 현실이 이같은 모습으로 노출된 것"
이라며 "거대시장과의 경쟁을 눈앞에 둔만큼 더더욱 다양하고 깊이있는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며 나아가 독창적인 기획과 영화형식을 개발,
다품종소량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