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인 에어"는 근대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샬롯 브론테의 원작을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이 리메이크한 작품.

고전의 묘미를 현대감각으로 잘 살려낸 수작이다.

줄거리는 원작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여자의 일생보다 한 인간의 운명에 초점을 맞췄다.

제인의 자세도 적극적이다.

주연여우 샬롯 갱스브르는 깡마른데다 별로 예쁘지도 않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수도원에서 갓나온 듯한 맑은 영혼의 소유자.

로체스터 (윌리엄 허트)의 황폐한 성격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이미지다.

그녀는 강요된 삶에 짓눌려 폐쇄적으로 변해버린 한 남자의 삶을
사랑으로 치유한다.

냉소적인 차가움과 사랑을 갈망하는 따뜻함이 함께 배어있는 남자.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고뇌하는 그를 보고 제인은 묘한 설레임을 느낀다.

사랑은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온다.

로체스터는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하지만 그때문에 가슴은 더욱 뜨거워
진다.

"내 심장은 당신과 연결돼 있소. 제인, 딴 세상 사람같은 당신을 내몸
처럼 사랑하오".

15년간 어둠의 세월을 살아온 그의 고백이다.

그러나 결혼식날, 그의 과거가 밝혀지자 제인은 놀란 끝에 떠나고 만다.

저택은 불길에 휩싸이고 두 눈을 잃어버린 로체스터.

몇달뒤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되돌아온 제인 앞에서 그는 말할수 없는
격랑에 휩싸인다.

"이것이 꿈이라면, 깨기 전에 키스해 주오. 난 벼락에 맞아 죽어가는
나무처럼 엉망이 됐소"

"살아있는 한 곁에 있겠어요.

당신은 활기차니 곧 새잎이 돋고 푸르러질 거예요"

개척지에서 일궈낸 사랑의 열매는 단단하다.

흑백톤으로 번지는 마지막 화면위로 제인의 독백이 긴 여운을 남기며
겹쳐진다.

"우리의 심장은 하나인양 뛰고, 우리는 또 그렇게 행복하다"

( 13일 씨네하우스 / 중앙 / 유토아 개봉 예정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