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됐던 일이라고는 하나 주목할 만한 상황전개가 아닐수 없다.
아직 최종 개표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예상대로 공산당이 제1당이 될
것만은 확실하다.
공산당 뿐만 아니라 보수-민족주의 성향 정당들의 약진도 주목된다.
옐친 대통령을 지지하는 체르노미르딘 총리의 "우리조국 러시아당"은 이미
패배를 시인한 상황이다.
최근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옛 공산세력 부활의
물결이 한때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에까지 밀려온 셈이다.
옐친의 개혁세력이 이처럼 참패한 것은 개혁정책에 수반되는 경제난과
빈부격차 심화, 사회불안 등에 불만을 품은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경제상황의 점진적 호전에도 불구하고 연금생활자 및 농촌주민들이
생활고 문에 개혁정책에 등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공산당이 제1당이 된다 해도 옛 소련으로 복귀하는 것은 아니다.
의회가 대통령의 결정을 번복려면 전체의석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공산당이 옐친의 개혁노선을 바꾸기는 대세로 보나 의석수로
보나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결과가 러시아의 대내외 정책에 미칠 영향은 크다.
당장 내년 6월의 대통령선거에서 옐친이 승리할 전망은 매우 불투명해졌다.
여기에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는 옐친의 건강도 문제다.
만약 공산당이나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사회주의로의 복귀는 아닐지라도 경제체제가 "통제된 시장경제체제"로 변질
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또 공산당및 보수 정당들이 이번 총선에서 내건 공약들로 미루어 대외정책
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될 것같다.
비록 외교-안보 정책의 최종 결정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하나 의회내
보수-민족주의 세력의 약진은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군사력강화, 국제사회
에서의 영향력 확대, 구공산권및 현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 등의 방향
으로 몰고갈 위험이 있다.
이러한 대외 정책방향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대한반도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작년 여름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 남북관계에 대한 균형정책을 더욱 강화
시킬 수도 있을 것이며, 이는 그동안 소원했던 러.북한 관계를 크게 개선
시키는 계기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신생 러시아의 출범이후 민주세력의 정치-경제 개혁에 적지 않은 지원을
해온 우리로서는 러시아에서의 공산당및 보수세력의 득세를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 기업들의 대러시아 투자를 포함한 양국 경제관계가 나날이 확대
되고 있는 터여서 이같은 관심은 더 각별할수 밖에 없다.
정부는 러시아 총선결과가 미-중-유럽등 강대국과 러시아간의 관계는 물론
한-일-러및 북한-러 관계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 대응책을 세우는데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