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을 우리나라에선 절곡 또는 절식이라고도한다.

단식은 흔히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저항수단(단식투쟁)으로 행해지지만
그밖에도 단식기도등 종교적 행위나 치병등 건강요법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단식투쟁이라 하면 인도의 간디를 연상케 된다.

이 인도의 지도자가 단식에 들어가면 인도의 모든 도시는 밤에 전등을
끄는 것으로 동조했다.

간디는 모두 17회에 걸쳐 단식을 했고 단식기간은 20일내외였다한다.

조선조말의 성리학자 의당 박세화(1834~1910)는 단식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1910년 7월27일(음력)나라가 일본에 합병됐다는 소식을 듣고 8월
4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의당은 단식 9일째인 11일에 "찬의조선"이라는 4대자를 쓰고서 "우리의
당당한 바른 나라가 짐승들 때문에 망했으니 슬프다고 말조차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단식 26일째인 28일 아침에 선비답게 조용히 운명했다.

"의당집"은 그가 죽기 전날 밤 지진이 일어났었고 운명할 땐 짙은 안개가
세상을 뒤덮었었다고 끝맺고 있다.

안양교도소에 수감중인 전두환전대통령이 지난 3일부터 단식을 시작해
19일로 16일째를 맞게된다.

전씨는 12일부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해 보행이 힘들 정도이고
탈수의 초기증세를 보이고 있다 한다.

그런데 국민들은 전씨가 무엇때문에 단식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수가
없다.

그는"5공의 정통성 수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결의"라며 "역사 정리를
빌미로 한 정치보복은 나자신에 국한돼야 한다"고 요구사항마저 곁들였었다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가 말하는 "5공의 정통성"이나 "정치보복"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수 없고 단식으로 얻어내려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5공의 정통성"이나 "정치보복"여부는 법의 심판으로 밝혀지는 것이고
단식으로 해결 될수 없기 때문이다.

전씨가 단식하는 속셈에 대해 추측이 무성하다.

그는 단식으로 국민의 동정을 얻으려 하고있다는 관측과 정부에 대한
"무언의 압력"이라는 해석, 그리고 스스로 건강을 악화시켜 검찰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으려는 것이라는등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양식있는 국민으로선 납득할수가 없는 일들이다.

전씨는 금명간 종합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되리라 한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법의 심판이나 여론이 유리하게 돌아갈 상황은 아니다.

그가 해야할 일은 단식이 아니라 속죄와 참회의 길뿐이라고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