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연이 살려 달라고 여전히 엎드려 빌고 보옥이 명연을 계속 닦아
세웠다.

"연극 공연장에서 시중을 들고 있어야할 놈이 도대체 언제 여기로
빠져나온 거야? 그리고 다른놈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 거야?"

보옥이 가진 대감댁으로 연극을 구경하러 올때 보옥옆에서 시중을 드는
하인들이 같이 따라 왔는데 명연도 그중의 하나였다.

"물론 저희들이야 도련님옆에서 시중을 들어야지요.

그런데 연극 공연장에서 말입니다.

"정랑이 아비를 알아보다"를 보고나서 "황백앙이 음혼진을 치다"를
보는중에 둘러보니 도련님이 안보이는 거예요.

그래 도련님이 연극이 재미가 없어서 가진 대감댁을 슬그머니 빠져나가
다른 데서 놀다 오는줄 알았죠.

도련님이 영국부로 돌아갈 저녁때쯤에야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는
저희 몇몇도 그 무렵에 돌아오리라 하고 연극 구경이 지겨워 공연장을
빠져나왔죠.

그래서 한 사람은 노름을 하러 가고 또 한사람은 기생이 있는 술집으로
가고 또한사람은 설음식을 얻어 먹으러 친구집으로 갔죠.

나머지 우리보다 어린 것들은 아직도 연극구경을 하고있을 거예요"

"잘들 노는군. 내가 한눈만 팔았다하면 너희들은 기회는 이때다 하고
요령 피울 생각만 한단 말이야.

내가 너희들의 시중을 받느니 차라리 거위들을 데리고 다니는게 낫겠어"

그렇게 명연에게 닦달질을 하면서 보옥이 옆에서 옷으로 몸을 가리고
서있는 여자를 흘끗 쳐다 보았다.

그러다가 보옥이 두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이거 봐라. 제법 살결이 고운데. 제법 살결이 고운게 아니라
옷으로 못다가린 가슴과 엉덩이께의 살결이 눈이부실 정도로 희어서
보옥은 자기도 모르게 침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갔다.

얼굴은 그저 그렇게 생겼지만 살결 하나만은 기가 막혔다.

명연이 녀석이 어떻게 저리 살결이 고운 여자를 꾄 것일까.

객주집 도마같이 생긴 녀석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옥이 여자를
다시금 뜯어보니 살결이 하얀중에 유독 빨간 부분이 눈에 띄었다.

바로 귀밑이 빨개져 있었다.

순진한 구석도 있는 여자군. 그여자에게 마음이 기우러지는 것을
느끼며 보옥이 짐짓 여자에게 큰소리를 쳤다.

"냉큼 나가지 못할까. 여기가 어디라구"

여자가 정신이 난듯 깜짝 놀라 옷을 주섬주섬 껴 입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을 쳤다.

여자가 도망을 가자 보옥이 명연을 붙들어 앉히고 그 여자에 대하여
꼬치꼬치 물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