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인터뷰] 정지태 <상업은행장>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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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은행본점 4층에 위치한 정지태은행장실.
이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게 "우리 주변에 누수현상은
없습니까"라는 글이 새겨진 포스터다.
주변에서 사고위험성을 발견하면 언제든지 신고하라는 내용이다.
사고예방포스터는 비단 은행장실에만 걸려있는게 아니다.
전국영업점은 물론 식당 복도에까지 붙어있다.
그만큼 상업은행과 정행장이 금융사고나 부실여신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쏟는 노력은 남다르다.
이런 노력은 이제 가시적 성과를 얻었다.
지난달 23일자로 상업은행은 "자구은행"이라는 멍에를 벗었다.
당초 자구계획 완료예정이었던 97년말보다 2년 빠른 기간이다.
금융계에서는 상업은행의 이런 변신은 정지태행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다고 말하고 있다.
정행장의 지칠줄 모르는 추진력이 오늘의 상업은행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정행장은 은행내부에서도 거의 쓰러질 위기에 있었던 상업은행을
재건한 주인공으로 꼽히고 있다.
정행장을 만나 자구계획 추진과정과 앞으로의 은행경영계획에 대해 들어
봤다.
=======================================================================
[[[ 대담 = 박영균 < 금융팀장 > ]]]
-우선 93년 7월부터 97년말까지 추진키로 돼있던 자구계획을 조기에
완결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금융계에선 이를 두고 "기적"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인데요.
소감이 어떠십니까.
<>정행장=참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경쟁은행은 외형을 키워가고 있는 마당인데 우리는 줄여야 했으니까요.
지난 2년반 동안 2천여명의 직원을 감축하고 12개의 점포를 없앴습니다.
자회사인 상업증권과 상은신용금고를 비롯 각종 동산과 부동산을
팔았습니다.
심지어 운동부도 해체했습니다.
그 결과 부신여신비율 수익성 재무구조등 경영이 완전 정상화됐습니다.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않겠습니다.
-자구계획을 조기에 완결할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한데요.
<>정행장=직원들의 일치단결된 노력이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간부급 직원들은 2년동안 임금인상분을 반납했으며 임원들은 월급과
상여금을 반납했습니다.
일반 직원들도 각종 복리비와 복지시설을 줄여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노력이 없었더라면 단기간에 경영정상화를 이루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통을 참고 노력해준 직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자구노력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특히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정행장=모든 과정이 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수십년동안 함께 생활해온 직원들을 감축할때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명예퇴직제와 안식휴가제를 실시해놓고도 막상 직원들이 은행을 떠날땐
뭐라고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저며왔습니다.
은행을 더욱 발전시키는 일만이 은행을 떠나신 분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업증권을 매각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정행장=물론 종합금융그룹을 완성하기 위해선 증권사가 반드시 필요
합니다.
상업증권은 당시 자회사중에선 수익성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모회사인 은행이 어려운 상황이라 어쩔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론 3천억원이상의 매각이익이 경영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합작증권사등의 형태로 증권사를 다시 세울 계획은 없으신지요.
<>정행장=물론 장기적으론 증권사를 만들어야겠지요.
그러나 당장 계획은 없습니다.
-정행장께는 "대출등 각종 청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니 "참 독한 사람"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요.
왜 그런 말이 나왔습니까.
<>정행장=93년초 1조여원을 빌려 주고 있던 (주)한양이 부실화되면서 부실
여신도 급증했습니다.
93년말엔 무려 7천6백3억원에 달했습니다.
은행중 가장 많은 수준이었죠.그러나 지난 6월말에는 1천5백25억원으로
대형은행중 가장 적은 은행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6월말 가결산결과 업무이익(2천5백70억원)과 당기순이익
(3백49억원)도 시중은행중 가장 많이 냈습니다.
기존 부실여신을 최대한 없애고 신규 부실여신발생을 가능한 억제한
결과죠.
이 과정에서 행장인 자신부터가 규정에 맞지 않는 청탁은 가능한 배제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수식어가 나온것 같습니다.
-경영정상화의 촛점을 부실여신억제에 두었던 얘기로 들리는데요.
<>정행장=80년대까지 일등은행이었던 우리 은행이 어려워진 이유는 두가지
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80년대 초반의 이철희.장영자사건과 명성사건등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사고에 많이 관련됐다는 겁니다.
92년말의 이희도명동지점장사건등 은행내부적인 사고도 많았고요.
두번째는 중동지역에 진출해있던 건설업체와 (주)한양등을 비롯 대형 부실
여신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금융사고와 대형 부실여신등 두가지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 은행이 살아
남을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93년초 취임이후 이 두가지에 촛점을 맞춰 은행을 경영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업은행이 여신운용을 너무 보수적으로 해 거래업체를 다른
은행에 뺏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는데요.
앞으로 "대출세일시대"가 본격 도래하면 여신거래처 확보도 중요한 것
아닙니까.
<>정행장=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중요한건 우량거래처이지 은행에 상처를 주는 거래처는 아니지
않습니까.
특히 최근엔 금융자율화가 진전되고 있습니다.
은행마진은 줄어들고 리스크는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액부실여신이 발생한다면 은행은 생사에 관련된 치명상을
입고 맙니다.
회복불능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따라서 부실여신발생을 최대한 억제
하면서 여신거래처를 확보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정행장=쉽지 않다고 중요한걸 간과해서야 되겠습니까.
각종 방법을 개발해야죠.
상업은행의 경우엔 과학적인 심사기법을 개발하고 심사전문가를 양성
했으며 여신전결권을 대폭 하부로 이양했습니다.
또 과거 외부청탁으로 불가피하게 취급했던 여신이 주로 부실화되고 있던
점을 감안해 외부청탁을 막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만일 대형 부실여신이 발생한다면 과거와는 달리 은행이 알아서 처리해야
된다는 환경변화도 부실여신발생을 억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일깨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한양을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한 것은 특혜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정행장=80년대 중반 산업합리화업체를 지정할때의 시각으로 봐서 그런
말이 나온것 같습니다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엄격한 자산부채실사를 거쳤으며 인수자결정도 공정했습니다.
정부에서도 필요성을 공감했고요.
서민주택을 전담하는 주공이 인수자로 결정된 것만 봐도 알수 있지
않습니까.
-자구은행이란 오명을 벗어던진 상업은행을 앞으로 어떻게 이끄실 계획
이신지요.
<>정행장=종전의 경영방침을 그대로 지켜가겠습니다.
부실과 사고발생을 예방하고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영업력을 강화해 나갈 생각입니다.
-정행장께서는 평소 직원들과 자주 어울리다보니 "대리급 행장"이란 별칭도
얻었습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시는 점은 무엇입니까.
<>정행장=자신감과 주인의식을 가져달라는 겁니다.
그동안 은행이 침체됨에 따라 직원들도 패배감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패배감은 사라졌습니다.
주가도 올라가고 감독원평가에서도 AA를 얻었습니다.
자구은행이란 오명도 벗었고요.
또 본점도 신축중에 있습니다.
주인의식도 많이 생겼습니다.
여신을 취급할때 내돈이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있습니다.
그러니 부실여신도 줄어드는 것 아닙니까.
이런 분위기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생각입니다.
-얘기를 좀 바꿔 보겠습니다.
최근 금융계의 최대 관심사는 은행간 합병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행장=남의 일이 아닙니다.
합병의 시기가 언제 올것인지 단정적으로 말할순 없지만 빠른 시일내에
합병바람이 불어올 것으로 봅니다.
일종의 대세인 셈이죠.
여기에 대비하지 않은 은행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실제 상업은행만 해도 옛날이긴 하지만 한성공동은행과 원산상업은행등
6-7개 은행을 합병했습니다.
이런 대세를 앞서갈수 있는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신축중인 본점이 완공되면 정행장의 흉상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본점 신축공사는 잘 되갑니까.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98년말에는 완공될 계획입니다.
그러면 99년 창립1백주년 행사는 신축건물에서 할수 있을 겁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5일자).
이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게 "우리 주변에 누수현상은
없습니까"라는 글이 새겨진 포스터다.
주변에서 사고위험성을 발견하면 언제든지 신고하라는 내용이다.
사고예방포스터는 비단 은행장실에만 걸려있는게 아니다.
전국영업점은 물론 식당 복도에까지 붙어있다.
그만큼 상업은행과 정행장이 금융사고나 부실여신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쏟는 노력은 남다르다.
이런 노력은 이제 가시적 성과를 얻었다.
지난달 23일자로 상업은행은 "자구은행"이라는 멍에를 벗었다.
당초 자구계획 완료예정이었던 97년말보다 2년 빠른 기간이다.
금융계에서는 상업은행의 이런 변신은 정지태행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다고 말하고 있다.
정행장의 지칠줄 모르는 추진력이 오늘의 상업은행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정행장은 은행내부에서도 거의 쓰러질 위기에 있었던 상업은행을
재건한 주인공으로 꼽히고 있다.
정행장을 만나 자구계획 추진과정과 앞으로의 은행경영계획에 대해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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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박영균 < 금융팀장 > ]]]
-우선 93년 7월부터 97년말까지 추진키로 돼있던 자구계획을 조기에
완결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금융계에선 이를 두고 "기적"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인데요.
소감이 어떠십니까.
<>정행장=참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경쟁은행은 외형을 키워가고 있는 마당인데 우리는 줄여야 했으니까요.
지난 2년반 동안 2천여명의 직원을 감축하고 12개의 점포를 없앴습니다.
자회사인 상업증권과 상은신용금고를 비롯 각종 동산과 부동산을
팔았습니다.
심지어 운동부도 해체했습니다.
그 결과 부신여신비율 수익성 재무구조등 경영이 완전 정상화됐습니다.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않겠습니다.
-자구계획을 조기에 완결할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한데요.
<>정행장=직원들의 일치단결된 노력이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간부급 직원들은 2년동안 임금인상분을 반납했으며 임원들은 월급과
상여금을 반납했습니다.
일반 직원들도 각종 복리비와 복지시설을 줄여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노력이 없었더라면 단기간에 경영정상화를 이루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통을 참고 노력해준 직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자구노력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특히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정행장=모든 과정이 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수십년동안 함께 생활해온 직원들을 감축할때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명예퇴직제와 안식휴가제를 실시해놓고도 막상 직원들이 은행을 떠날땐
뭐라고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저며왔습니다.
은행을 더욱 발전시키는 일만이 은행을 떠나신 분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업증권을 매각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정행장=물론 종합금융그룹을 완성하기 위해선 증권사가 반드시 필요
합니다.
상업증권은 당시 자회사중에선 수익성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모회사인 은행이 어려운 상황이라 어쩔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론 3천억원이상의 매각이익이 경영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합작증권사등의 형태로 증권사를 다시 세울 계획은 없으신지요.
<>정행장=물론 장기적으론 증권사를 만들어야겠지요.
그러나 당장 계획은 없습니다.
-정행장께는 "대출등 각종 청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니 "참 독한 사람"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요.
왜 그런 말이 나왔습니까.
<>정행장=93년초 1조여원을 빌려 주고 있던 (주)한양이 부실화되면서 부실
여신도 급증했습니다.
93년말엔 무려 7천6백3억원에 달했습니다.
은행중 가장 많은 수준이었죠.그러나 지난 6월말에는 1천5백25억원으로
대형은행중 가장 적은 은행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6월말 가결산결과 업무이익(2천5백70억원)과 당기순이익
(3백49억원)도 시중은행중 가장 많이 냈습니다.
기존 부실여신을 최대한 없애고 신규 부실여신발생을 가능한 억제한
결과죠.
이 과정에서 행장인 자신부터가 규정에 맞지 않는 청탁은 가능한 배제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수식어가 나온것 같습니다.
-경영정상화의 촛점을 부실여신억제에 두었던 얘기로 들리는데요.
<>정행장=80년대까지 일등은행이었던 우리 은행이 어려워진 이유는 두가지
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80년대 초반의 이철희.장영자사건과 명성사건등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사고에 많이 관련됐다는 겁니다.
92년말의 이희도명동지점장사건등 은행내부적인 사고도 많았고요.
두번째는 중동지역에 진출해있던 건설업체와 (주)한양등을 비롯 대형 부실
여신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금융사고와 대형 부실여신등 두가지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 은행이 살아
남을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93년초 취임이후 이 두가지에 촛점을 맞춰 은행을 경영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업은행이 여신운용을 너무 보수적으로 해 거래업체를 다른
은행에 뺏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는데요.
앞으로 "대출세일시대"가 본격 도래하면 여신거래처 확보도 중요한 것
아닙니까.
<>정행장=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중요한건 우량거래처이지 은행에 상처를 주는 거래처는 아니지
않습니까.
특히 최근엔 금융자율화가 진전되고 있습니다.
은행마진은 줄어들고 리스크는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액부실여신이 발생한다면 은행은 생사에 관련된 치명상을
입고 맙니다.
회복불능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따라서 부실여신발생을 최대한 억제
하면서 여신거래처를 확보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정행장=쉽지 않다고 중요한걸 간과해서야 되겠습니까.
각종 방법을 개발해야죠.
상업은행의 경우엔 과학적인 심사기법을 개발하고 심사전문가를 양성
했으며 여신전결권을 대폭 하부로 이양했습니다.
또 과거 외부청탁으로 불가피하게 취급했던 여신이 주로 부실화되고 있던
점을 감안해 외부청탁을 막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만일 대형 부실여신이 발생한다면 과거와는 달리 은행이 알아서 처리해야
된다는 환경변화도 부실여신발생을 억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일깨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한양을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한 것은 특혜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정행장=80년대 중반 산업합리화업체를 지정할때의 시각으로 봐서 그런
말이 나온것 같습니다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엄격한 자산부채실사를 거쳤으며 인수자결정도 공정했습니다.
정부에서도 필요성을 공감했고요.
서민주택을 전담하는 주공이 인수자로 결정된 것만 봐도 알수 있지
않습니까.
-자구은행이란 오명을 벗어던진 상업은행을 앞으로 어떻게 이끄실 계획
이신지요.
<>정행장=종전의 경영방침을 그대로 지켜가겠습니다.
부실과 사고발생을 예방하고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영업력을 강화해 나갈 생각입니다.
-정행장께서는 평소 직원들과 자주 어울리다보니 "대리급 행장"이란 별칭도
얻었습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시는 점은 무엇입니까.
<>정행장=자신감과 주인의식을 가져달라는 겁니다.
그동안 은행이 침체됨에 따라 직원들도 패배감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패배감은 사라졌습니다.
주가도 올라가고 감독원평가에서도 AA를 얻었습니다.
자구은행이란 오명도 벗었고요.
또 본점도 신축중에 있습니다.
주인의식도 많이 생겼습니다.
여신을 취급할때 내돈이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있습니다.
그러니 부실여신도 줄어드는 것 아닙니까.
이런 분위기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생각입니다.
-얘기를 좀 바꿔 보겠습니다.
최근 금융계의 최대 관심사는 은행간 합병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행장=남의 일이 아닙니다.
합병의 시기가 언제 올것인지 단정적으로 말할순 없지만 빠른 시일내에
합병바람이 불어올 것으로 봅니다.
일종의 대세인 셈이죠.
여기에 대비하지 않은 은행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실제 상업은행만 해도 옛날이긴 하지만 한성공동은행과 원산상업은행등
6-7개 은행을 합병했습니다.
이런 대세를 앞서갈수 있는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신축중인 본점이 완공되면 정행장의 흉상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본점 신축공사는 잘 되갑니까.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98년말에는 완공될 계획입니다.
그러면 99년 창립1백주년 행사는 신축건물에서 할수 있을 겁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