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을 평가한 책을 최초로 저술한 사람은 역사가가 아니라
극렬한 반혁명론자였던 아베 바루엘이란 인물이었다.

그는 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펴낸 "자코뱅주의 역사를 위한 회고록"
이라는 책에서 "프랑스혁명이란 커다란 범죄와 죄악의 원인은 비밀결사에
의해 오래전부터 획책된 음모때문에 일어났다"고 나름대로 규정해
놓았다.

반혁명의 성향을 지니고 있었던 그의 서술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프랑스혁명을 이해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책은 사료의 하나로 인용되기는 해도 프랑스혁명에 대한
올바른 사서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역설적인 이야기이기는 해도 사실과 사료를 취득해 정리하는 일은
감정개입이 있을수 있기 때문에 그 사건이 지난후 보다는 당대에서가
더욱 어렵다.

"4.19" "5.16" "12.12" "5.17" 등 한국현대사에 분명히 수록돼야할
사건들에 대해 역사가들이 평가를 하려들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역사서술이란 불가피하게 서술자의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 입각한 그의
생각의 반영일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나 국가의 요구, 여론의 향배, 또는
일반대중의 욕구 등 현실적 압력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제약도 따른다.

문인이나 미술가처럼 사실에 입각하지 않는 인위적인 창조를 할수
없는 것이 역사가의 위치다.

그래서 "계속 형성되고 있는 미완성의 역사"를 안타깝지만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어떤 사건이 역사가의 판정을 받아 사서에 기록되는 것을 일반적으로
"역사의 심판"이라고 부른다.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정식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아 단종이
복위되는데 25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서도 "역사의 심판"에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을 실감할수 있다.

5.18관련자를 "역사의 심판"에 넘기겠다던 김영삼대통령이 "5.18특별법"
을 제정해 그들을 법에 따라 처리함으로써 이 땅에 정의와 법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밝혀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과거 한국의 최고 정치지도자들처럼 "자기의 신념이 곧 역사"인듯
착각하고 권력을 뒤흔들었던 때와 같은 일이 벌어져서도, 또 현재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과거가 왜곡돼서도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헤로도투스는 "진실을 찾아내는 일"의 뜻으로 "역사"라는 말을 사용했다.

진실을 밝혀내 관련자를 의법처리한뒤 다시 "역사의 심판"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