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오하이오주에서 보스니아 평화협상이 무산직전에 극적으로 타결됐다는
소식이 22일 새벽에 전해졌다.

이로써 냉전종식후 4년 긴세월 세계를 우울하게 만들어온 유럽 한복판
야만적 살육전의 종결가능성은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부르기조차 엇갈리는 통칭 보스니아 내전은 관련된 정파-인종-종교-인접국
의 이해에서 각기의 목표에 이르기까지 어느하나 분명한게 없는, 복잡을
극한 혼전 그 자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무려 36차례의 휴전시도가 깨졌고 이번 말고 앞서 두차례 체결된
평화협정도 백지로 화한만큼 이번 협정의 성사 역시 장담하기란 어려운
상태다.

그러나 복잡성에 못지 않게 비전투원의 집단강간 학살등 헤아리기 어려운
잔학상속에 사망자만 25만명을 낸 이 전쟁이 끌면 끌수록 이젠 아무에게도
득이 없다는 사실, 그래서 평화만이 유일의 종착점이라는 합의만은 확실해짐
으로써 2년전 평화협정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미국의 단호한 의지다.

클린턴은 과거 EU와 유엔 주도하에 있던 이 문제에 깊숙이 개입, 이번
오하이오주 데이턴회담을 전제로 지난달 12일 이래 휴전을 주도했다.

게다가 협정이행의 관건이 NATO 6만 평화유지군중 2만 미군의 충당을
확약하고 나섰다.

소비에트 해체이후 세계 단독 지도국이 된 미국의 입장으로나 재선을
희망하는 개인으로나 팔레스타인 2단계 평화정착에 이어 발칸평화 회복의
주도는 역사적 기회여서 클린턴이 그동안 보여준 노력과 의지는 어느때보다
대단했다.

마침 건강문제로 옐친의 이의제기 입김이 약해진 점 또한 찬스라면 찬스다.

그러나 앞으로 워싱턴에서의 가서명-파리의 정식조인을 거친 발효까지도
그러려니와 발효후 3개 서명 당사자간의 상충된 이해의 조정이 가능할
것인지를 예측하기란 조심스런 단계다.

따져보면 특히 먼 거리의 아시아인에게 이 전쟁은 생소하다.

터키지배 아래 이민족-종교간의 뿌리깊은 갈등이 티토의 반나치 결속으로
잠복했다가 동구권 해체후인 91년6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공화국
독립선언으로 발화됐다.

이듬해 회교주류인 보스니아가 다시 공화국을 선언, 더욱 얽혀만 왔다.

이번 평화회복 성패도 분할된 10개주 상호간, 그리고 느슨한 중앙정부와
주정부간의 마찰, 특히 영토분점이 협정대로 존중되느냐에 달려 있다.

협상초에 미국은 보스니아에 국토 51%를 차지토록 추진해 러시아지지의
그리스정교 세르비아계의 반발을 샀었다.

이번 협정안에 보스니아 지분을 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세르비아 자치지역
으로 반분키로 물러서긴 했으나 전쟁에서 70%를 차지한 세르비아계 기득권의
설득이 난제로 꼽힌다.

그러나 환경보전등 인류공통의 과제가 산적한 새 세기진입 문턱에서
문명국들이 인종-종교 마찰로 인한 야만적 도륙전을 수습못하고 더이상
계속함은 인류공통의 수치가 아닐수 없다.

이미 쏟아부은 노력과 평화갈망의 세계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선의
하나로 미의회는 클린턴대통령의 파병안에 초당적으로 동의하리라 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