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패 파란과 대조되는 참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변이 어제 서울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이 별개의 사태전개를 눈앞에 두고 국민 모두가 활짝 열리는
새로운 지평위를 분발하여 전진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읽는다.

수천년 한.중 접촉사에서 중국 통치자의 한반도 출입은 중원 통일전
침략군을 이끈 청태종과 대만으로 밀려난 장개석총통 말고는 없을만큼
드문 일이다.

그러나 더 큰 의미는 경제팽창과 소연방해체로 세계의 영향력이 미국에
버금하게 된 현대 중국이 21세기 문턱에서 한반도의 북아닌 남과 더 가까운
우의를 세계에 과시했다는 점에서 찾을수 있다.

원수 방문외교에 신중한 중국의 강택민주석이 서울로 김영삼대통령을
찾아와 세계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사실은 그가 아태경협체(APEC)회의
참가도상에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시사하는 바 크다.

오사카 APEC회의는 미 일등 16개국 원수가 지역의 장래뿐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가입등 중국의 이해가 직결된 문제를 다룬다.

따라서 그에 앞선 한.중수뇌 대좌는 세계이목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는
변화며 사건이라 할만하다.

실로 한국외교는 반세기동안 동으로 미.일과의 일직선 안보공동체내의
수동적 역할에 머물러 설사 모스크바나 북경에 대해 할말이 있더라도
워싱턴이나 도쿄를 통한 간접대화에 의존해야 하는 제한된 행동반경안에
있었다.

이제 경제규모의 10위권 육박,북방제국과의 수교,유엔에서의 입장강화등
한국의 국제지위 변화는 새 강자 중국의 대미 대일관계 설정에서 최적의
지렛대역을 맡을 만큼 현격한 것이다.

우리가 누누히 강주석의 방한을 역사적 사건으로 규정하는 참뜻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진정 이번 서울에서의 한.중정상 대좌가 시대를 긋는 전환점으로
오래 기억되기 위해서는 지속적 국력성장을 바탕으로한 한국 외교역량의
질적 증대가 긴요하다.

또 그러한 역량이란 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국력이어야 하되 높은 문화
도덕수준을 빠뜨릴 수 없다.

국회연설에서도 표방됐듯이 정상회담 오찬.만찬등 어제의 서울일정으로
사실상 마무리된 강주석 방한의 최대역점은 자국경제 건설의 지속과
공동번영 의욕과시, 이미 호조에 있는 양국간 통상 경협관계의 진전을
더욱 다지려는 의지의 확인으로 비쳐졌다.

강주석의 한반도문제 입장천면은 당사자간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간명한 수준이었다.

이는 직접대화를 피하며 대미.일 접근을 노리는 북한에 대한 의사표시로도
볼 수 있다.

이것이 미.일의 대북한 접근을 자극이 될지 모르나 평화의 뚜렷한 보장이
전제된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

강주석 국회연설이 패권주의 영구포기로 호도되는 속에 일본에 대한 반성
촉구 언급이 없다.

그러나 회담에서 깊은 논의가 있었다는 관측이다.

한.중.일 새 동아관계에서 중.일의 잠재적 패권경합을 평화 공영으로
유도하는 열쇠는 지리적 위치에 부합한 한국의 역할에 쥐여져 있다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