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객들이 또 이름짓는 일인가 하고 좀 지겹다는 기색을 띠며 가정을
따라 뜨락을 둘러보다가 가정과 눈이 부딪치자 표정을 부드럽게 풀었다.

"파초나무에 두루미라는 뜻으로 초학이 좋겠는데요"

이렇게 말하는 문객은 뜨락 한쪽에 서있는 파초 몇그루를 두고 그런
이름을 지었음에 틀림없다.

"초학이라는 이름보다는 해당화 활짝 피니 눈이 부시다라는 뜻으로
숭광범채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숭광범채라? 거 좋은 이름입니다. 고상하고 장엄한 구석이 있고"

가정과 다른 문객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이름을 칭찬하였다.

그러나 보옥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니?"

가정이 반문을 하고 문객들이 일제히 보옥을 주목해 보았다.

"이 뜨락에 파초에 해당화를 아울러 심어놓은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푸름과 붉음을 조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중 하나만 가지고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이 뜨락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살릴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쉽다는 것이지요"

"그래 너라면 뜨락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 어떤 이름을
짓는 것이 좋겠는가?"

가정이 보옥의 말이 길어지는 것이 귀찮다는 듯이 말을 끊으며 물었다.

"저라면 홍향록옥이라고 짓겠습니다"

홍향은 붉은 향기라는 뜻이므로 해당화를 가리키는 것이요, 녹옥은
푸른 옥이라는 뜻이므로 파초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향기와 옥을 연결시키다니 넌 아직 멀었다"

가정이 머리를 저으며 사람들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보옥은 또 머쓱한 기분이 되어 축처진 어깨를 하고 일행의 뒤를 따랐다.

참으로 이상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 아니할수 없었다.

이토록 아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는 아버지도
다시 없을 것이었다.

방안은 다른 곳과는 달리 사이벽을 막지 않고 넓은 통방으로 되어
있었다.

사면 벽에는 금칠을 하고 구슬을 박아 넣은 정교한 널판자 조각들이
가득 둘러져 있었다.

흘러가는 구름, 날아다니는 무수한 박쥐들, 세한삼우(추운 겨울의
세 벗)인 소나무와 대나무와 매화나무들, 갖가지 풍경과 인물, 거기다가
새의 깃, 꽃과 풀, 여러가지 무늬, 옛 물건들, "만복만수"라는 도안
들씨 등등 널판자에 조각되어 있는 것들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