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전대통령이 검찰로부터 소환요구를 받고 1일 오전9시45분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출두했다.

전직대통령의 검찰 출두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검찰내에서는 이를 두고 크게 고무된 분위기이다.

그간 말만 무성했던 "성역없는 수사"가 이제서야 실현됐다는 반응이다.

물론 전직대통령이 검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76년 박정희정권 당시 윤보선전대통령이 "3.1민주구국선언 사건"과
관련, 긴급조치위반혐의로 불구속입건된 적이 있었다.

또 12.12및 5.18사건과 관련해 전두환전대통령과 노전대통령이 검찰의
조사를 받은 사례가 있다.

그러나 윤전대통령의 사법처리는 유신정권이라는 비정상적인 정치상황에서
빚어진 일종의 정치탄압이었으며 전.노 두 전직대통령은 소환조사가 아닌
서면조사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더욱이 12.12과 관련, 최규하전대통령은 참고인 자격을 서면답변을 요구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같은 과거사례를 고려할 때 이번 노전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는 그
사법적 의미가 실로 막중한 것이다.

긴급조치, 12.12, 5.18등이 정치적 성격을 띤데 반해 이번 노전대통령
비자금 수사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독직과 관련된 형사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직대통령에 대한 최초의 형사사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부정부패에 연루된 고위공직자는 국회의원이나 장관선에서
그쳤으며 대통령이 이와 관련돼 조사를 받는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 우리의 실정이었다.

따라서 검찰은 이를 계기로 "수사에는 지위고하가 없다"는 검찰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또 검찰의 오랜 숙원인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
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관계자는 이와 관련, "노전대통령의 소환결정은 비리의혹이 있는
사람에 대한 수사의 당연한 절차일 뿐"이라며 소환결정에 어떤 외압이나
정치적 고려도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주변에서는 "노전대통령 소환조사" 하나만을 가지고 검찰이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반응도 간간히
흘러나오고 있다.

즉, 이번 비자금 수사역시 정치권과의 철저한 교감하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박계동의원이 국회에서 이 사건의 단초를 처음 제공했을 때 검찰은 무척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검찰관계자는 "총리와 법무장관의 답변 내용을 들어봐야 한다"며 상부의
방패막이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여권이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수사가 불가피
하다"며 정공법으로 나오자 검찰의 수사도 적극성을 띤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같은 "정치종속"구조는 노전대통령의 소환 직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김영삼대통령은 노전대통령의 소환 하루전인 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당직자들과 조찬을 함께하면서 "나는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이) 비자금이
아니라 부정축재라 생각한다"며 이의 조성경위를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검찰이 아직 혐의를 못잡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하는 사람에 대해서
대통령이 벌써 범죄자로 못박아 버린 것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이같은 정치권의 기류를 보고 "이번 사건 역시 정치권이
짜 놓은 각본에 검찰이 "자객"으로 참여하는 것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록히드 스캔들"로 다나카를 전격 구속한 일본 검찰의 태도는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

당시 도쿄지검은 법무상외에는 다나카 구속을 미리 알고 있는 정치인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를 전격구속했다.

도쿄지검은 20여일간 다나카를 수감한 상태에서 조사를 마친 후 그를 기소
하면서 "정치적압력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증거만 쫓아 여기까지 왔을 뿐"
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결국 검찰이 노 전대통령을 소환한후 앞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에 따라서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이룩했느냐의 여부가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이번 노 전대통령 조사는 검찰의 진정한 독립성를 시험하는 기회가
될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윤성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일자).